4.
1이 사라졌다
허겁지겁 전화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는다
아직 차단하지 않았구나 하는 비참한 기쁨을 느낀다
조심스레 메시지를 전달해본다
귀찮아하는 말투지만 대화는 이어진다
메시지 하나를 쓸때마다 새로운 상처를 새기고 답장이 오면 그 상처가 사라진다
덤덤히 이어지는 대화는 나를 상처입힐뿐 빠르게 잊는것만이 피해가 가장 적다는걸 나도 알고있다
하지만 놓아버리면 평생 후회할 순간임을 직감하여 필사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본다
파국으로 치닫는걸 느낀다
진작 끝난 마음의 조각들을 억지로 이어 관계를 복구하려 노력한다
그녀는 거부한다
다시 스스로 만든 껍데기 속으로 들어간다
과거의 내가 그랬던거처럼
하지만 관계의 씨앗은 간신히 심은거 아닐까
'남'에서 '지인'정도까지는 될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슬픔의 바다에서 간신히 건져올린 희망은 아직 숨을 쉬지 않는다
5.
마음은 연결되지 않더라도 뭐라도 연결되고 싶다는 생각에 넷플릭스를 결제하고 아이디 비번을 보내본다
답장이 없다
하지만 1은 사라졌다
물어볼 용기는 안난다
그녀의 이니셜로 된 프로필이 사용되기를 상상하며 아무 영상이나 틀어본다
놀랍게도 아픔이 줄어 들었다
그런데 대놓고 여기서 우세요 라고 적힌거 같은 시덥잖은 장면에서도 눈물이 터진다
나의 마음은 깊은곳 끝까지 열려버렷고 아직까지 닫히지 않아 바람 한점조차 보호하지 못한다
과거 처음이라 그렇다며 다른 여자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말한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나를 시험해보려 데이트 어플을 설치해 닥치는대로 메시지를 보내본다
아름답다고는 할수 없는 그녀와는 달리 매력적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내온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저 그녀를 배신하는거 같은 차가운 느낌만이 들 뿐이다
기계적으로 결제하고 메시지를 보내본다
진짜 사람인지 아르바이트인지 ai인지 구분이 안가는 메시지가 또 온다
알면서도 나를 원하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의미 없이 결제한다
그녀가 보내오는거 같다는 현실도피감에 서서히 중독되는 느낌에 모조리 지워버렸다
지인이라도 좋다 그녀와 연락만 될수 있다면...
비슷한 성격이지만 완전히 다른 취향이며, 아픔을 극복하는과정도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느낌의 그녀를 난 사랑해버렸다
차라리 몰랐다면 이렇게나 아프지 않았을까
몰랐다면 이렇게나 소중한것을 평생 몰랐겠지
6.
그녀와의 첫 만남을 회상해본다
난 그저 부모님의 등쌀에 밀려 기계적으로 만났을뿐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보편적 기준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그녀에게서 알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기계적으로 만난 다른 여자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느낌
조금더 만나볼까 싶어 관계를 이어가본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끝없이 그녀를 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책에서 봣던 사랑에 대한 표현들이 문학적 표현이라 생각하고 욕망에의해 이끌리는게 인간이라 생각한 나는
그 문학적 표현들이 전부 진짜라는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속절없이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녀가 내 손을 처음 잡아준 순간의 두근거림을 회상하고, 그녀가 나를 처음 안아준 순간을 회상한다
내가 믿었던 행복은 기쁨과 슬픔도 없는 평온만이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에 의해 나의 가치관이 재정립되며, 나의 성격이 재구성되어감을 느낀다
나도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재발견하며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남을 느낀다
순간 회상이 멈추고 현실을 직시해본다
새삼스레 느낀, 가슴에서 무언가가 흘러 나오는 감각에 황급히 틀어막아본다
도피할것이 필요하다
외로움이란것을 모르던 나는 외로움의 존재를 깨닫고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끝없이 나를 뒤쫒아 올것임을 느낀다
미래의 나는 그땐 그랬지 하며 추억할까
아니면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끝없는 후회속에 부숴져 버릴까
정답은 시간만이 알겠지만 그저 지금은 그녀의 카톡 프사를 한번더 열어볼 뿐이다
(연예인)
에스파 윈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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