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통사람들도 지배구조 얘기, 정부가 대충 덮지 못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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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게 사서 싸게 판다…리튬값 급락에 이차전지 소재 업체 울상
수정 2024-03-20 08:29 등록 2024-03-20 07:00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 가격이 반등과 반락을 거듭하며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면서 원자재에서도 공급 과잉 문제가 터지는 모습이다. 리튬을 산 뒤 양극재로 완성해 납품을 해야 하는 이차전지 소재 업체에게도 큰 가격 변동성의 ‘리스크’(위험)는 커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관련 업체들은 줄줄이 영업손실을 냈다.

19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를 보면, 탄산리튬 가격은 지난 18일 기준 킬로그램(kg)당 106.50위안을 기록했다. 지난 15일 108.50위안에서 105.50위안으로 떨어졌으나 3일 만에 다시 소폭 올랐다. 지난해 6월만 해도 리튬 가격은 킬로그램당 300위안이었으나 빠르게 하락하더니 연말엔 86.50위안까지 내려왔다. 올 2월 겨우 반등에 성공했지만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불안한 모습이다. 리튬 가공은 대부분 중국에서 이뤄져 리튬 국제가격도 미국 달러가 아니라 중국 위안으로 책정된다

전기차 수요 둔화가 원자재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중국을 중심으로 리튬 채굴량이 크게 늘었던 것이 수요가 줄면서 공급 과잉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리튬은 주로 중국, 호주, 칠레에서 채굴된다.

리튬 가격 하락은 이차전지 소재 업체들의 영업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은 3~6개월 전 사들인 리튬을 양극재로 제조해 배터리 기업에 납품한다. 양극재 원가에서 리튬의 비중은 약 40%에 이른다. 문제는 납품가에는 공급할 때 시점의 리튬 가격이 반영된다는 점이다. 리튬 가격이 계속 하락세면 비싸게 리튬을 사서 싸게 양극재를 완성해 파는 구조가 된다. 손해가 불가피한 것이다. 실제 지난해 4분기 주요 이차전지 소재 업체들은 모두 영업손실을 냈다. 엘앤에프(-2804억원), 에코프로비엠(-1147억원), 포스코퓨처엠(-737억원) 등의 영업손실 배경엔 리튬값 내림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한 리튬값 불안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권준수·박주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 12일 보고서에서 “연초 리튬 가격 반등은 공급 감소로 인한 것”이라며 “추세적인 반등을 위해서는 (전기차) 수요 증가가 동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튬 가격의 널뛰기로 이차전지 소재 업체들의 속앓이는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북경사무소의 올 1월 분석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1년 1월~2023년 12월) 리튬 가격의 변이계수는 0.60으로 유가(0.17, 두바이유 기준) 대비 3배를 초과할 정도로 가격 변동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슬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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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통사람들도 지배구조 얘기, 정부가 대충 덮지 못할 것”
수정 2024-03-20 13:01 등록 2024-03-20 09:00

이재성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지난 8일 그룹 회장으로 승진하자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하 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반대 논평을 발표했다. “신음하는 이마트 주주에 대한 사과 및 기업밸류업 대책이 우선”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이마트 주가가 지난 5년간 59%, 10년간 70% 하락했고, 지난해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성과가 저조한데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승진을 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이마트 시가총액은 약 2조원에 불과한데 금융부채는 14조원으로 불었다. 미국 와이너리와 야구단 등 정 회장의 개인 관심사에 회삿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 회장은 “정 회장이 등기이사 선임을 피함으로써 이마트 주주들이 정용진 부회장 시절의 경영성과에 대해 아무런 평가를 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고 썼다.

지난 2월5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선고됐을 때는 “대한민국, 시장경제의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되고 있다. 진정 ‘거버넌스 갈라파고스’가 될 것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시민단체를 연상케 할 정도로 강경한 어조였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확실히, 그리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다른 나라와 ‘말’이 다른 법과 제도부터 빠르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거버넌스포럼의 주주운동은 2000년대 초반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과 비슷해 보인다. 지배주주라 하더라도 회사를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소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을 요구한다. 다만,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이 재벌 및 사회개혁 차원의 선도투적 성격이 강했다면, 거버넌스포럼은 자본시장의 논리에 충실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식투자 인구가 1400만명을 넘어서는 등 국민의 관심이 커진 점도 2000년대 초반과 다르다. 거버넌스포럼의 주주운동은 수십 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평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까?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남우 회장을 지난 12일 연세대 신촌 캠퍼스에서 만났다. 그는 삼성증권 초대 리서치센터장을 지냈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메릴린치 한국 공동대표 등을 거친 국제금융투자 전문가다. 2019년 12월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과 교수, 변호사 등과 함께 비영리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을 설립했고, 초대회장이었던 유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2대 회장 김규식 변호사에 이어 올해 초 제3대 회장이 됐다.

―정용진 회장 승진 관련해서 비판적인 논평을 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1심 판결에 대해서도 논평을 냈다. 회사를 지배주주의 사유물로 인식하는 퇴행적인 인식과 행태, 그에 대해 관대한 언론과 사법부, 이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멀다는 걸 알면서도 바꿀 의지가 없는 정부, 이 모든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구성하는 요소들 아닌가?

“정확한 표현이다. 대개 그렇다. 지배주주가 주식을 20% 들고 있고, 일반 주주가 80% 들고 있으면, 회사의 자산이나 이익, 현금흐름, 배당 모두 다 비율대로 나눠서 가야 한다. 이사회가 대주주를 견제해야 하는데 역할을 못해서 그렇다. 나는 자본시장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주로 본다. 이런 문제가 또 나오면 또 논평을 쓸 거다. 앞으로 이렇게 구체적인 얘기를 하려고 한다. 구체성이 떨어지면 별 의미가 없다. 교과서가 아니니까 익명은 의미가 없다. 충격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사외이사 중에 관료, 특히 검찰 출신이 많아졌다. 지배주주에겐 그들이 바람막이가 돼 줄 수 있다. 또 그 사람들이 경영을 잘 알지 못하니까 그냥 지배주주 하자는 대로 하고, 친분 맺고 그러면서 내일을 기약하고 그러는 것 아닌가.

“신세계, 이마트, 신세계건설의 경우, 사외이사들 대부분이 국세청,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아니면 법조인이다. 이번에 김주영 대표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와 함께 저희 포럼이 모범 정관을 만들었는데,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2명 뽑도록 하는 내용이다. 독립적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이사회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바뀐다.”

―결정권은 없는 것 아닌가.

“결정권은 없다. 근데 바뀐다. 모든 기록을 남기게 하고 투자가들이 경영진에 어필하는 게 아니라 이사회를 구성하는 개별 사내 및 사외이사한테 직접 내용증명을 보내고 이슈를 제기하고 독립적인 판단을 촉구하면 변한다. 외국은 그렇게 많이 한다. 법조인들이 더 부담을 느끼고 잘 변한다. 자기가 리스크가 있는 걸 아니까. 그렇다고 갑자기 고소당하고 그러지는 않겠지만 ‘이게 문제가 되네’하고 느낀다. 한 명이라도 독립된 사외이사가 들어가서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반대가 필요한 안건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이건 제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는 것이다.”

―정용진 회장은 회삿돈으로 취미 생활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아시다시피 와이너리 세 개 갖고 있고, 야구단이 도움된다고 하지만 그게 진짜 도움이 되나? 골프장 3개 중에 트리니티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인데, 지난 몇 년 동안 차입금이 2배가 늘었다. 이마트만 금융채무가 14조원이다. 이런 걸 정리하면 이마트는 오히려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 빛이 많으면 기업이 견디질 못한다. 시가총액이 2조원이고 빚이 14조원이면 이미 디스트레스(곤경)로 외국에서는 본다. 근데 한국의 신용평가사는 아직도 더블에이(AA)를 준다.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승진했다.

“이런 게 문제다. 사내이사는 안 하고. 그러니까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많이 선진화됐다고 하면서도 최근에 보면 이재용 회장 1심 판결도 그렇고, 정용진 회장의 행태도 그렇고 여전히 후진적이다. 지배주주 가족이나 측근들의 의식은 아직 20년, 30년 전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 세상 소식이 바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같은 사람은 본인이 직접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나가서 많이 부딪히니까 좀 나은 편이다. 그런데 다른 회장들은 노출을 꺼리고 측근이나 비서실을 통해서 제한적인 정보를 받고 그러니까 문제다. 되게 안 변한다.”

―경영 실적을 내고 주가를 올려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텐데 그렇게 안 해도 경영권 유지가 되니까 그런 것 아닌가.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되니까 주주도 무시하고 그러는 거 아닌가.

“그렇다. 일본은 행동주의 펀드들, 특히 외국 행동주의 펀드들이 엄청 많이 들어가 있다. 일본이 변한 가장 큰 이유 세 가지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이거다. 외국 행동주의자 펀드들이 기업들을 엄청 흔들어 댔다. 근데 우리는 지금 외국 펀드 거의 안 들어와 있다. 팰리스캐피털 같은 데가 삼성물산 주식을 좀 사서 주주 제안하고 그러지만 그거 빼놓고는 없다. 지금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해외 자금 유치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양질의 자금을 받으면 저평가된 회사에 사외이사를 선임해서 변화를 추구할 것이다. 이미 노하우도 있고 사회적인 인식이 옛날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영문 보고서 제출 같은 걸 이행하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주주를 무시하기 때문 아닌가?

“그냥 그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것 같다. 2월 26일 정부가 기업밸류업 지원 방안을 발표할 때도 영문 자료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영문 자료가 없냐고 했더니 금융위원회에서 5장짜리를 만들었더라. 2시간반 세미나 하고 패널 토론을 했는데, 그 내용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날 자료가 상당히 좋았는데 아쉽다. 외국 투자가들 요즘 한국에 많이 온다. 그것도 아주 높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엄청 많다. 20~30년 만에 가장 관심이 높다. 근데 우리가 너무 이런 걸 고려하지 않는 거다. 한국 시장의 30%가 외국인인데. 일본이 진짜 영어 못하는 나라인데 거래소도 모든 걸 다 영어로 만든다. 우리 공무원들도 주주들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하고 기업들도 바꿔야 한다. 오늘 외국인 투자가 두 군데를 만났는데 한국 기업들 영어 자료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더라. 하여간 2월 26일 정부가 제대로 못 했다. 그때 외국 투자가들이 ‘한국 정부가 멀었구나’ ‘일본보다 많이 뒤처져 있구나’, 그런 말을 많이 했다. 지난해 공매도 금지 조처 나오고 나서도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서 회복이 안 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진짜 이번에 과연 제대로 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

―말 나온 김에 공매도 금지 조처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창피한 일이다. 국제금융시장은 물이 흐르듯이, 일본 갔던 돈이 대만 갔다가 한국 왔다가 다시 태국으로 가고 그러는데, 한국은 갈라파고스같이 딱 서 있는 나라가 됐다. 진짜 충격적인 일이었다. 외국 투자가들은 지난해 금융당국 수장이 해외 로드쇼를 돌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한 지 두어 달만에 공매도 금지를 때려서 더 놀랐다. 이걸 안 했으면 코스피는 지금보다 100포인트 200포인트 더 올라가 있을 거다.”

―왜 이렇게 했다고 생각하나?

“몇몇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한 거 아닐까. 제가 아는 공무원들이나 장관들도 다 배제됐다. 나중에 알고 나서도 반대했지만 대통령을 둘러싼 몇몇 인사들이 주동이 돼서 밀어붙인 것이다. 이 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지, 국제금융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번 기업밸류업 지원방안 세미나 때도 패널 중에 외국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말이 안 되는 거다. 일본은 그런 걸 되게 잘했다. 일본은 1년 동안 거래소가 90곳의 투자가한테 피드백을 받았는데 70%가 외국 투자가였다.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거래소 이사장이 실제 자금 운용하는 사람들을 1대 1로 만나야 한다. 한 번 신뢰에 금이 가면 깨 먹는 건 하루지만 회복하려면 3년, 5년 이상 걸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의 핵심 원인은 무엇인가?

“크게 보면 네 가지다. 거버넌스 문제가 가장 크고 두 번째는 한국 기업 이익의 변동성이다. 이건 우리 산업 구조와도 관련이 있는데 이익의 변동성이 크면, 그걸 시클리컬이라고 하는데, 경기에 따라서 부침이 심하다. 한국 기업과 비슷한 미국 기업들도 미국 시장에서 실제 디스카운트가 된다. 그다음이 정부의 관치. 금융주는 대주주가 없어도 관치 때문에 디스카운트가 된다. 네 번째는 인구 감소와 내수의 장기 침체 가능성이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거버넌스다. 그동안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무시하는 관행이 굉장히 많았는데 아직도 그런 마인드가 개선되는 조짐이 안 보인다.”

―2월 26일 정부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B마이너스 학점을 줬다. 이유는?

“A도 아니고 C도 아니어서 어정쩡한 학점인데 나는 아주 실망스럽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국내에서는 많은 분이, 그리고 언론도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나는 정부가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들의 저항이 워낙 세기 때문에 일단은 한 서너 달 피드백을 받겠다는 것 아닐까. 앞으로 잘하면 A가 될 수도 있지만 못하면 C도 될 수 있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다.”

―일본의 경우 기업가치향상 프로그램과 함께 증시 개편을 병행했다. 이런저런 요구 사항이 의무라고 못 박진 않았지만, 일몰기간을 명시하면서 기준에 맞추지 못할 경우, 우리로 치면 코스피에서 코스닥으로 강등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재팬타임스’ 보도를 보면 피비알(PBR·주가순자산비율) 1 이하 기업이 이렇게 많은 상황을 가만히 놔둘 수 없다는 등의 표현이 거래소발로 나온다.

“맞는다. 일본 특유의 명예와 수치 정책(Name and shame policy)이다. 일본은 유달리 거래소 위상과 힘이 아주 세다. 특히 도쿄증권거래소(TSE) 사장과 임직원들이 독려와 채찍을 같이 사용했다. 우리도 공무원들이 ‘기업이 스스로 해야지’라고 말하는데 그치지 말고 계속 만나고 전화해서 자극을 주어야 한다. 금융수장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반영하는 쪽으로 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가 얼마 안 가서 법무부를 내세워 사실상 없던 일로 만들었다.

“상법 개정은 당연히 해야 한다.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우리 변호사 회원이 30명이고 베테랑들이 많아서 논리나 해외 케이스들 많이 갖고 있다. 앞으로 계속 푸시할 것이다.”

―공정위가 법인의 사익 편취 행위를 적발했을 때 원칙적으로 지배주주를 함께 고발한다고 지침을 개정하기로 하고 행정 예고를 했었다. 작년에 하반기에 했다가 그걸 철회했다. 기업들의 로비 혹은 저항 때문인가.

“금융위도 부담을 느낀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 대기업들은 전방위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니까. 언론사들도 거의 다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

―기업밸류업의 경우 모범답안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일본과 대만의 선례가 있고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인데 선의로 해석하면 기업들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일 테고. 비판적으로 보면 선거를 앞두고 애드벌룬만 띄워놓고 흐지부지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런 우려가 있는데.

“진정성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지배주주 가족이 있어서 이들의 저항이 가장 어려운 요소이지만, 반면에 우리는 1400만 개인 투자자와 2200만 국민연금 가입자가 전보다 훨씬 절실하게 원한다. 저출생 못지않게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진짜 심각하다. 저출생은 애를 못 낳는 것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돈이 없어지는 문제다. 기업이 계속 번창을 하더라도 주주들이 가난해지는 것이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자식 세대가 가난해지는 진짜 심각한 문제다. 국민이 최근 1~2년 사이에 그걸 알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미국 투자를 시작하면서 미국 기업들은 진짜 주주에게 잘해주네, 그걸 이제 막 느끼고 있다. 그건 우리가 일본과 또 다른 것 같다. 그 열기는 쉽게 줄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이 저항해서 정부가 대충 덮고 이러지는 못할 것 같다.”

―지주회사 제도는 실패한 것 아닌가. 기업들이 순환출자나 상호출자로 연결해서 작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니까, 삼성은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해결 방안으로 지주회사라는 제도를 만들었고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근데 해놓고 보니까 오히려 지배주주의 그룹 지배력이 더 강해졌다. 핵심 부문을 떼었다 붙였다 마법을 부렸더라. 제도 개혁을 하자고 해서 했던 건데 결과적으로 보면 총수의 지배력을 더 높이는 결과가 됐고 기업의 건실성은 더 망가졌다.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들이 사주만 생각하니까 그렇다. 최소한 사외이사는 독립성 같은 거대한 말을 떠나서 주주를 위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지주회사도 워낙 의도했던 거랑 다른 길로 간 것 같다. 지배주주가 최소한의 배당을 받는 대신 기업 가치는 낮춰 저렴하게 상속하는 관행이 고착화했다. 외국 투자가들이 보기엔 너무 이상한 현상이다. 이 좋은 자회사를 다 들고 있는데 피비알(PBR·주가순자산비율)이 0.3 이러니까. 역시 이사회 개편을 통해서 바꾸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주주 환원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보잉사의 경우, 단기 경영 실적을 통한 주가 부양과 주주 환원에만 신경 쓰느라 알앤디 같은 투자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기술회사로서의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있다. 주주 중심 경영의 단점 중의 하나인데, 이런 건 어떻게 보완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사례가 자본주의의 메카인 미국에서 가끔 발생한다. 그래서 결국 파산의 길을 가는 경우도 있다. 본업의 근원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장기적인 성장, 설비투자나 알앤디, 엠엔에이가 먼저고, 그다음에 배당을 비롯한 주주 환원, 그다음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일부 경영진이 지나치게 단기 업적주의로 가거나 이사회가 그걸 막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보잉 같은 데는 이사회에 군인 출신이 많아서 독립성에 문제가 있었다. 항공사들의 경우 자사주 매입 소각을 너무 많이 해서 코로나 때 적자가 나니까 자기 자본이 없어서 정부 재정 지원받고 그런 사례가 있었다. 결국 이사회가 중요하다. 전문성과 소신과 독립성이 있는 이사회가 필요하다.”

―회삿돈으로 산 자사주를 특정 지배주주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결국 이사회 결정의 문제 안닌가.

“맞는다. 우리가 3주 전쯤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논평을 냈다. 설비투자, 연구개발(R&D), 엠엔에이(M&A), 이런 게 다 현금 지출이 필요한 거 아닌가. 자사주는 현금을 지출해서 회사 주식을 산 건데, 설비투자와 알앤디, 엠엔에이는 모든 주주에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만 자사주는 소각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지배주주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시애틀이 있는 미국의 워싱턴주 같은 일부 주는 자사주라는 게 아예 없다.”

―성공적인 밸류업의 사례로 메리츠금융 예를 많이 드는데, 지주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 금지 같은 건 법이나 거래소 규정으로 정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한국같이 반칙을 많이 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해도 된다. 최근 미국의 3M이 헬스케어 회사를 분할하는데 분할하는 회사의 주식을 원래 모회사한테 그냥 그대로 준다. 외국은 그렇게 해야 이사회 통과가 된다. 모 회사의 주주가 손해를 보지 않게. 근데 우리는 그런 의식 있는 독립적인 이사회가 없으니까 강제화하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다”

―거버넌스포럼의 활동을 보면, 2천년대 초반 참여연대가 전개했던 소액주주 운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여연대가 재벌의 순환출자 및 상호출자에 대한 비판, 총수의 지배권 남용 같은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 운동을 주도했던 장하성, 김상조 같은 분들은 지난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지낸 바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한국의 재벌은 대단한 존재다. 세계적으로 이런 존재가 없다. 전 세계에서 거의 실패한 적이 없는 엘리엇이 현대차랑은 표 대결 가서 졌다.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과 지금 우리 활동은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우리는 자본가들이 들어와 있다는 점, 그리고 당시에는 일반 국민이 지배구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근데 지금은 국민의 반 이상이 관심이 있다. 거버넌스가 진짜 보통 사람들이 얘기하는 주제가 됐다.”

―지금 이 운동을 하시는 가장 큰 이유가 우리 사회의 부의 축적, 특히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개인들의 부의 축적이라는 얘긴가?

“우리나라는 배당 포함해서 지난 10년간 주식 시장 수익률이 5%밖에 안 됐다. 미국은 12%, 일본이 9%였다. 직장 초년생이 지금 1천만원을 투자할 경우 수익률이 지금처럼 5%라면 30년 후에 원금이 4300만원이지만, 연 10%만 돼도 30년 뒤에는 1억7500만원이 된다. 어마어마한 차이다. 내가 직접 투자한 것, 국민연금에 들어가 있는 내 돈이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숫자로 보여주면 사람들이 다 안다. 이 5%와 10%의 차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한국 기업들이 후진 게 아니고 기업은 좋은데 돈 버는 것만큼 주가로 표출이 안 되니까 문제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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