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리뷰] 챔피언스리그 유벤투스 전 벤치 지킨 손흥민... 국내 팬들 원성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누구도 행복하지 못했다. 손흥민과 에릭 라멜라의 불편한 동거가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내린 '의문의 선택'은 모두에게 아쉬움만 남겼다.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는 14일(한국시간) 열린 2017/1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유벤투스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2-2로 비겼다. 초반 먼저 두 골을 내주고 끌려가던 토트넘은 해리 케인과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연속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원정에서 2득점과 무승부라는 나쁘지 않은 성과를 올리며 2차전에서 8강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하필이면...
이날 경기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장면은 손흥민의 벤치행과 라멜라의 선발출전이었다. 올 시즌 11골을 기록하며 팀 내에서 해리 케인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올릴 만큼 좋은 활약을 보였던 손흥민은 유벤투스 전에서도 당연히 선발출전이 예상되었으나 놀랍게도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손흥민의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보기위하여 밤잠을 설쳤던 국내 축구팬들이 느낀 실망감은 더 컸다.
하필 손흥민이 벤치로 내려가면서 대신 선발출전의 기회를 얻은 선수가 라멜라였다는 것도 국내 팬들의 심기를 더욱 자극했다. 라멜라는 2016년부터 장기 부상으로 1년 가까이 결장하다가 지난해 11월경에야 그라운드로 복귀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까지는 단 한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복귀 후에도 주로 교체멤버로 나섰으나 16경기 1골에 그치며 포지션 경쟁자라고 할수 있었던 손흥민에 비하여 크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랬던 라멜라가 중요한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유벤투스 같은 강팀을 상대로 선발 출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아쉽게도 라멜라는 모처럼 얻은 '선발의 자격'을 경기력으로 증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라멜라 후반 43분 루카스 모우라와 교체할 때까지 거의 풀타임에 가깝게 출전시켰지만 딱히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나마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경기력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찬스로 이어지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손흥민은 무려 후반 38분에야 교체 투입되었지만 무언가를 보여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차라리 손흥민과 라멜라의 역할을 바꾸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날 경기 후 다수의 해외 언론들도 손흥민 대신 라멜라를 선택한 포체티노 감독의 용병술에 의구심을 표시했다. 일부 국내 팬들은 포체티노 감독과 라멜라가 같은 아르헨티나 국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손흥민이 특정 선수 편애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포체티노 감독의 선택에도 나름의 명분은 있었다. 포체티노 감독은 라멜라의 '이탈리아 리그 경험'과 '창의적인 기술'을 높이 평가했다. 확실히 라멜라는 컨디션이 좋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토트넘에서 가장 위력적인 드리블러 중 한 명이자, 혼자서 경기흐름을 바꿀 수 있는 '크랙'의 재능을 갖춘 선수다. 문제는 부상 이전의 라멜라를 기준으로 한 이야기이고, 부상 복귀 이후 지금의 라멜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포체티노 감독 입장에서는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팀 사정상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라멜라 같은 자원을 살려야한다는 생각을 가질 법하다. 하지만 유벤투스 전은 당장 성적을 내야하는 경기이고 챔스 16같은 빅매치에서 무리한 실험은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대안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손흥민 같이 가장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를 벤치로 돌리는 무리수까지 감수해야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결과라도 좋았다면 포체티노 감독의 모험은 신의 한수가 되었겠지만 경기가 끝난 지금은 손흥민과 라멜라 모두에게 '마이너스'에 가까웠다.
손흥민과 라멜라의 물고물리는 기묘한 악연은 손흥민이 토트넘에 입단한 2015년부터 시작됐다. 포지션이 겹치는 두 선수는 자연히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구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손흥민이 아시아 선수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면 토트넘에 입성할 당시 라멜라는 프리미어리그 적응에 실패하며 이적설이 거론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첫 시즌에는 손흥민이 부상과 리그 스타일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하는 사이에 라멜라가 부활하여 주전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이듬해 라멜라가 장기 부상과 가정사가 겹쳐 장기간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손흥민이 급부상했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 토트넘에서 21골을 넣으며 한국인 유럽파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웠고, 올 시즌도 11골을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현재의 주가만 놓고 보면 손흥민이 라멜라를 아득하게 추월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전화위복
한편으로 손흥민과 라멜라의 경쟁구도는 부작용도 남기고 있다. 두 선수는 2016년 맨체스터 시티와의 리그 경기 중 얻어낸 PK를 차는 문제를 놓고 잠시 실랑이를 벌인 일도 있다. 결국 손흥민이 양보하며 물러났지만 라멜라는 실축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라멜라는 일부 과격한 국내 팬들에게 단단히 '미운 털'이 박혔고 SNS로 인신공격을 당하는 온라인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손흥민은 경기 중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이후로도 라멜라와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러 번 증명하기도 했다.
사실 라멜라는 손흥민의 포지션 경쟁자라는 점 때문에 일부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과도하게 비난을 당하거나 저평가 받는 경향도 있다. 지난 유벤투스 전 이후 라멜라가 손흥민을 제치고 선발로 출전한 것을 두고 이번에도 많은 한국 팬들이 라멜라와 포체티노 감독을 비방하고 악플을 남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손흥민에 대한 한국 팬들의 애정을 감안해도 자제가 필요한 부분이다. 손흥민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손흥민과 라멜라는 포지션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서 서로 공존해야하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손흥민에게는 이번 해프닝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2월 들어 빡빡한 일정 속에 약간 페이스가 떨어졌다는 우려를 자아냈던 손흥민이다. 유벤투스 전은 결과적으로 손흥민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손흥민은 토트넘 입단 이후 지난 2년간도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결국 실력으로 자신의 입지를 개척해온 바 있다. 챔스 16강 같은 빅매치에서 손흥민의 선발 제외가 논란이 되었다는 자체가 그만큼 손흥민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이다. 토트넘은 아직 3개의 대회를 소화하고 있으며 손흥민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다음 기회는 충분하다.
이런기사보면 그만큼 위상이 올라섰다는것 좋게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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