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의 최근 변화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부숴버린 재단사

올시즌 EPL에 새로온 감독이 부임한 팀은 바로 맨시티와 첼시죠.

그래, 이 구단들이 어떤 팀을 만들지 흥미로웠는데, 마침 엊그제 맨유를 처바르면서;; 첼시의 변화가 새삼 주목받고 있네요.

더욱이 그 경기의 승리로 콘테는 무리뉴의 유산을 처분했다는 평까지 나오고 있더군요. (뭐 그런 말 나올 만한 듯..)

그런 의미에서 조금 살펴봅니다.

축구 감독들을 보면 대충 두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포메이션 및 전술을 고집해서 거기에 선수들을 끼워맞추는 스타일의 감독들.

운이 좋거나 혹은 돈이 많아서 자신의 이상과 팀의 현실을 맞출 수 있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지 몰라도

그렇지 않을 때는 사람을 침대에 눕혀 놓고는 맞지 않으면 사람의 다리를 잘랐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를 연상시키죠.

그와 반대로, 특정 전술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포메이션을 찾기 위해 계속 실험하고 시도하는 감독들.

전자에 비해 유연하고 구단 입장에서는 돈도 적게 드는 타입이지만, 꼬이면 맨날 실험만 하다가 볼짱 다 보는 수가;;

예전부터 보면 이탈리아 출신 감독들이 후자 유형에 가깝더군요.

과거 첼시 감독이었고 지금 레스터를 맡고 있는 라니에리도 그렇고, 이번에 새로 첼시에 부임한 콘테도 이런 부류더군요.

이들의 생각은 "감독이란 팀에 가장 잘 맞는 옷(=포메이션)을 만들어주는 재단사"라는 콘테의 말에서도 잘 드러나지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스타일의 감독들이 팀 빌딩하는 걸 지켜보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이와 다른 유형의 감독들은 좀 뻔해서...)

처음 콘테가 첼시에 올 때만 해도 유베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애용하던 3-5-2를 쓸 거라는 추측이 많았지만,

콘테는 한마디로 일축했죠. "지금 첼시 선수들의 특성에는 3-5-2가 맞지 않음"

그리고는 시즌 초장에는 지난시즌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4-2-4, 4-3-3 등을 애용했지요.

달라진 거라면, 파브레가스를 캉테로 바꾼 것, 그리고 기존틀을 유지하면서 공격수들에게 보다 자유로움을 부여하는 정도.

개인적으로는 좀 재미없다라고 생각했었고, 그 정도로 크게 달라질까? 싶었는데...

그러나 9월 말 리버풀과 아스날에게 연패하면서 콘테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애들이 맞지 않는 침대에 누워있었구나...'

한 다섯경기 정도 치르고 나니까 선수들의 특성이 파악됐는지 과감하게 침대를 폐기처분해버렸네요.

그러면서 10월부터 3-4-3을 들고 나왔지요. 그리고는 이후 3경기에서 3연승 9득점 무실점.

(왼쪽은 첼시가 패한 리버풀전의 4-3-3, 오른쪽은 엊그제 승리한 맨유전의 3-4-3)

구체적인 변화를 보면...

먼저 수비에서는 4백의 왼쪽풀백을 보던 아즈필리쿠에타를 3백의 오른쪽자리로 이동시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신의 한수처럼 느껴지는데, 원래 이 선수가 열심히 뛰고 대인방어는 좋지만 공격지원능력은 시원치가 않았죠.

왼쪽에서는 물론이고, 오른쪽에서도 공격능력은 그냥 평범하죠.

(이전 감독의 경우에는 풀백은 딴거 다 필요없고 상대 윙어 상대로 대인방어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중용했지만..)

더욱이 3백의 수비수 3명을 모두 떡대형 수비수로 구성해놓으면 전술적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즈필리쿠에타처럼 비교적 민첩한 스타일의 수비수를 하나 넣을 수 있다면 더욱 좋지요.

하여간 선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몸에 딱 맞는 옷으로 갈아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변화 아니었나 싶네요.

또한, 3백으로 전환한 덕에 루이스도 자신의 장점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덤..

미드필드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시즌 초만 해도 캉테를 4백 바로 앞, 즉 미드필더로서는 가장 처진 위치에 배치했었죠. 마티치나 오스카/파브레가스 등을 앞에 두고.

지난 유로에서 보니 프랑스 대표팀의 데샹 감독도 비슷한 실수를 하던데, 이건 캉테의 장점을 반으로 줄이는 거죠.

대여섯 경기 치루자 콘테도 이걸 알아차린 것 같더군요.

3-4-3으로 전환한 덕에 미드필더 숫자를 하나 줄이고, 대신에 마티치(왼쬭)-캉테(오른쪽)으로 평행 배치합니다.

(근데, 캉테의 활동량이 많아서 경기중에는 더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함)

그러자 캉테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면서;; 레스터 시절의 모습을 재현하기 시작하네요.

뒤집어 말하면, 캉테의 장점 덕에 팀 차원에서는 미드필더 숫자를 하나 줄이고 다른 포지션에 더 여유를 줄 수 있는 셈이죠.

뭐, 그만큼 좋은선수라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론 EPL에서 지난시즌 최고의 선수는 캉테, 그 이전 시즌은 아자르라고 보는데,

그 먼치킨 땅꼬마 두 선수가 이번 시즌에는 같은팀에서 뛰네요. ㅎㅎ

물론, 지금의 변화가 완성됐다고 보기는 힘들고, 약점이 없는 것도 아니죠.

무엇보다도 3백 시스템의 팀이 잘 돌아가려면 윙백 자리의 전술적 능숙함이 절대적인데, 이게 아직은 좀 아리송하니까요.

오른쪽 윙백은 이제껏 실속없이 많이 뛰기만 하는 윙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모제스가 맡고 있는데,

베니테즈 밑에서 윙어로 꽤 나왔다가 무리뉴 시절 임대뺑뺑이 돌다가 콘테가 오면서 다시 돌아온 선수죠.

사실, 윙어로는 상위권팀에서 많이 뛸 수 있는 자원은 아니라고 보지만,

직선달리기에 능하고 신체능력도 나쁘지 않아 당장은 윙백으로는 괜찮은 활약을 보이고 있네요.

더욱이 뒤쪽에 비슷한 포지션을 소화한 경험이 있고 커버범위도 넓은 아즈필리쿠에타가 배치되었기도 하고.

그에 비해 이번에 부랴부랴 영입한 마르코스 알론소가 맡고 있는 왼쪽라인은 추후 약점을 드러낼 수도 있겠더군요.

전진해서 공격에 가담할 때는 왼발킥이 좋아서 한 몫을 하지만,

운동능력이 그렇게 좋은선수가 아니라서 수비에는 좀 문제가 될 수도 있겠더군요.

지난 맨유전을 봐도 맨유의 전반전 주요공격루트는 발렌시아를 알론소에게 일대일로 붙이는 거였죠.

알론소가 힘좋은 발렌시아를 상대로 좀 버거워자, 후반 콘테는 알론소의 전진을 자제시키고 수비에 치중하게 만들더군요.

이러면 아무래도 왼쪽라인의 밸런스가 약해질수 밖에 없지요.

더욱이 콘테의 애초 의도가 아자르 등의 수비부담을 줄여줘서 공격에 치중할수 있도록 해주자는 거였는데,

알론소가 전진을 못한다면 그 앞 공간을 아자르건 마티치건 누군가가 메꿔줘야한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이 대목에서 첼시로서는 과거 팔아먹은 운동능력 괜찮은 왼쪽 수비자원들-버트란드, 반안홀트 등-이 생각날 수밖에 없겠네요.

특히나 지금 선더랜드에서 수비수임에도 에이스 놀이하고 있는 반안홀트같은 선수는 이런 시스템의 왼쪽윙백으로 딱이었을 거 같은..

하여간 지금 첼시의 3-4-3은 경기결과가 보여주듯이 이전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모습으로 밸런스가 좋아졌습니다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다른 팀들의 분석이 이루어지면, 이처럼 좌우 밸런스가 문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맨유전처럼 누구나 먼저 왼쪽라인부터 공략하고 나올 듯..

그리고, 장기적으로 다른 포지션들과 달리 윙백의 백업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죠.

아, 그리고 공격라인에 대해서는 별 말을 안 했는데, 선수 면면의 변화는 없었죠.

대신에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거의 윙백처럼 움직여야했던 윙어들의 수비부담은 크게 줄여주고 공격의 자율성을 늘려줬죠.

그래서 요즘 아자르를 보면, 이전처럼 수비시 풀백 있는 데까지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고,

공격시에도 사이드에만 치우쳐 있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다니더군요..

하여간, 아자르는 전임감독 밑에서는 공격에, 수비에, 공수전환시 볼 운반까지.. 혼자 2~3인분 하느라 X고생하더만;;

콘테 밑에서는 수비 부담은 줄고, 볼 운반도 모제스, 캉테 등과 나눠맡고, 이제는 공격에만 보다 치중할 수 있게 됐더군요.

이대로라면, 이번 시즌 꽤 좋은 활약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반면, 또 다른 윙어자리는 윌리안, 페드로, 오스카 등이 번갈아 기용될 수밖에 없겠는데, 아무래도 좀 처지죠.

역시 나이 포지션에 대해서도 첼시보드진으로서는 데브라이너나 마타 같은 팔려나간 선수들이 생각날 수밖에 없겠네요.

뭐, 돈 있으면, 그리즈만 같은 스타일의 선수 하나 데려다 놓으면, 딱 볼 만하겠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