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 무척이나 뜨거웠던 그때 우리

2017년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 1987이 드디어 개봉했다.
2003년 『지구를 지켜라』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던 장준환 감독과
충무로의 연기파 배우 김윤석, 하정우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인
김태리까지 다양한 배우들이 총출동하면서 화제가 된 영화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된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다루고 있다.

영화 『1987』은 크게 전반기 그리고 후반기로 나뉠 수가 있다.
물고문으로 사망한 故 박종철의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는 윤 기자와 최 검사와
진실을 은폐하려는 대공 수사부의 대립을 전반기라고 한다면
후반기는 전두환의 호헌을 철폐하기 위해 재야인사들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호헌을 철폐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대학생들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큰 줄거리로는 하나의 이야기지만, 각자 다른 뿌리를 둔 이야기 방식은
좀 더 우리가 왜 87년 6월 거리로 나와야만 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쉽게 성공할 수 있으면서도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각색으로 인하여 반발을 감당해야 한다.
장준환 감독은 이 두 가지를 놓고 균형 있게 그리고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하정우가 예상외로 비중이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이 오히려 감독이 잘 풀어낸 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도 6월 항쟁은
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시발점이 되면서 시작이 되었지만, 그 누구 한 명으로 바뀐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힘으로 이뤄낸 의미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배우들이 자그마한 역할로 이 영화에 참여를 하고 참여를 희망하였다고 한다. 
항간에 386세대나 그 시절을 보낸 배우들의 부채의식으로 참여가 많았다고 평가한 평을 봤는데
그것보다는 여기의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주연이기에
소소한 역할에도 유명한 배우들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는 거리로 뛰어나온 사람들을 비추며 마무리를 한다.
희망찬 메세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면 대공 수사부 형사들은 처벌을 받았지만,
정작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일명 꼬리 자르기를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역사적인 사건을 보여주면서 아직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가 이뤄졌지만, 양 김이 분열을 하면서 노태우가 당선이 되었고,
재벌에 대한 밀어주기가 심해지면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부조리는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리도 30여 년이 지난 6월의 항쟁처럼 부조리에 분노한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박근혜가 탄핵되고 현재 국정 농단의 가해자들이 수사를 받고 있다.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우병우 구속 심사나, 조윤선 판결을 보면 아직도 적폐는 청산되지 않았다.)   

영화 『1987』은 팩트와 픽션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에는 꼭 신파적인 요소를 차용하면서 관객들에게 너 울어야 할 시간이야
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덤덤하게 풀어내면서 그 덤덤함 속에서 슬픔을 느끼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들은 튀는 사람 없이 마치 정교하게 짜인 부품적으로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물론 외모적으로 튀는 배우가 한 명 있긴 하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관객 모두 탄성을 질렀다.)
박종철 삼촌으로 등장한 조우진이나 박종철을 연기한 여진구 등 짧은 분량에도 아주 잘 표현을 했다,
다만, 김태리의 친구역으로 등장하는 배역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역이라 할 수 있는 김윤석은 시종일관 뚝심 있게 연기를 한다.
개인적으로 김윤석이 부산 억양으로 인하여 다른 지역 사투리가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거기에 연기가 너무 강해서 간혹 녹아들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배우들과 합이 너무 좋았다.

조그마한 종이 한 장을 얻기 위해 거리로 나선 뜨거웠던 그 해 여름 영화 『1987』은
우리에게 그 역사의 소용돌이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몇 가지 사실

1. 김정남이 피신했던 향린교회는 재야인사들의 회의장소로 사용되던 곳으로
소외된 계층을 위해 헌신하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에 앞장선 곳이다.
실질적으로 경찰은 향린교회가 아닌 다른 곳을 지키고 있어서 150여명으로
사회 재야 인사로 구성된 국본 발기인대회가 무사히 치뤄질 수 있었다.

2. 구속 수사된 경찰관들은 출소 이후 경찰 관련 산하 기관에 취업을 하였다. (특혜성 논란)

3. 박종철 고문 치사에 대한 부검의 실시를 안상수가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박종철의 부검을 실시했던 사람은 최환으로 안기부와 검찰의 완력다툼으로 인해 
화장을 승인하지 않고 부검을 끝까지 주장한 설정이 맞다고 인정하였다.

4. 대공수사실 치안감은 이근안의 도피를 도왔으며 아직까지 사과 하지 않았다.

5. 박종철이 감쌌던 동료 몇 명은 변절자가 되어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