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까지 그들을 17번 만날 수 있었다.
조엘 코엔은 1954년생, 에단 코엔은 1957년생이다.
2017년 116번째 영화
9.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The Man Who Wasn't (2001) : 이론은 유령을 구원하지 못한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차이를 분간할 수 있는 이지의 획득 여부가 분명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위 첫 문장에서 '있을 수' 다음에 조사 '는' 이나 '도'를 첨가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그렇다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왜냐하면 그 남자는 결코 이발사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짐작하다시피 최종 목표는 객석에 앉아있는 독자에 있다.
즉, '거기 없었던 그 남자'는 성차를 떠나서 관객이어야한다. 이런 착각, '모든 것을 보았어 그러니 유령이 아니야'라는 논리가
성립가능한 이유는 주어가 생략되어도 문장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독일 발음의 변호사가 배심원에게 주문하는 자세는 이와 같다.
'거기'는 관찰의 자리이지만, 그 자리가 오직 이발사의 뒤를 좇아갈 때 동일 오류가 발생한다. 교통사고 이후 난데없는 플래쉬백.
어떤 남자가 이발사의 집 마당에서 서성거리다가 아스팔트 진입로를 판매하려고 한다. 자, 이 남자는 누구인가? 제목의 지목을
거역하여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 역)가 아닌 '이 남자' 외판원에게 대입해보자. 사유를 말하자면, 그는 거기 없어도 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 자체로 특급변호사 리든쉬네이더가 엉뚱하게도 배심원에게 정황 증거의 개연성 강론이
아닌 불확정성의 논리에 기반한 보이는 것 너머의 의미라는 왜곡 아닌 왜곡을 주장하는 바에 해당하는 '저 너머'의 인물이다.
그 세일즈맨은 누구인가를 묻자면, 그는 무엇을 판매했는가와 그가 대화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에 주목해야한다. 세일즈맨은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도로의 아스팔트 설비 판촉을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통로성이다.
그의 말을 듣는 이는 이발사 에드이지만, 정작 거절하는 이는 아내 도리스이다. 그녀는 판촉물을 찢어버리는 무례도 겸한다.
이쯤에서 본편이 취하는 수많은 불가지론 중 하나를 언급해야겠다. 자살한 도리스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는 그녀가 임신 중임을
남편 에드에게 알리는데, 태아는 결코 에드가 아닌 다른 남자와의 불륜 결과다. 문제는 그 다른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작 사실 너머의 의미는 다른 지점에 있을 수 있다. 도리스는 과연 임신 사실을 몰랐을까? 그녀는 남편과 잠자리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임신은 불륜이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낙태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3개월을 내버려두었다.
세일즈맨이 불륜남일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욕조 안에서 에드에게 다리털을 면도해달라고
하면서 '사랑한다'라고 말할 때 흑백필름 어디에서도 성적 긴장감이 생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지 에드의 유령성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발현된다. 두 사람이 각자 유령일 때 둘의 관계 역시 유령성 안에 머물게된다.
행복한 사람으로 돌아가자. 본편에서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앎이다. 파편적인 앎이 아니라, 전능적인 인지다. 도리스가
갑자기 구치소 내에서 자살하기 전 그녀의 마지막 태도는 빅 데이브의 군 경력 거짓말에 대한 조소였다. 즉, 도리스는 스스로가
잘 알고있다고 생각한 빋 데이브의 식사 자리 농담을 진실로 받아들인 자신을 경멸하게된다. 이것이 그녀가 자살한 이유이다.
'빅 쇼'를 준비한 변호사 리든쉬네이더의 뒤집기 한판이 충분히 예고된 상황에서 도리스는 갑자기 왜 자살했는가에 대한 추정은
본편의 여러 불가지론 중 하나이지만, 그것이 에드를 새삼 '말 없는 남자'로 자신을 새삼 책정시키는 사유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에드의 직업인 이발사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다듬는 직업인데, 단지 머리결을 잘라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인상은 달라진다.
이와 동반되는 에드의 동료이자 처남인 프랭크는 말이 많고 그의 후임 역시도 말이 많다. 여기서 말은 머리카락이지만, 자를 수
없는 휘발의 물질이다. 핵심은 자른다는 행위나 말하지 않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경유한 전후에도 원형을 알 수 없음에
있다. 제한된 몇몇 헤어스타일을 반복하는 이발사의 손놀림이나 불필요한 온갖 가십을 떠들어대는 입을 변형시킨다해도 과연
인물은 불가지론의 암흑을 탈주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버디(스칼렛 요한슨 역)의 베토벤 피아노 연주에 있다.
에
드가 버디의 피아노 연주에 이끌리는 이유는 거기에 말이 없고, 소녀 버디의 머리결은 이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같은 피아노와 머리결의 버디조차 에드가 추구하고자했던 원형이 아닌 쾌락에 근접해있다. 여기서 버디의 피아노를
영화로 한정한다면 그것은 작가주의 작품이라기보다 할리우드 흥행물에 가까울 것이다. 충분히 관객을 현혹시킬만큼의 장르성이
내재된 필름으로서 버디의 피아노 연주를 등치시킨다면 왜 에드가 결국 자신의 살인에 의해서 비틀기를 거친 이후 사형되는지
이해가능하다. 에드는 한정된 헤어스타일 연출만 가능한 이발사에 불과하고 말수는 적지만 말 너머를 감지할 능력이 부재하다.
이는 마치 첫 프레임에 전시된 이발관 표시의 기원에서도 설명된다. '나쁜 피'를 뽑아내는 것이 치료법 중 하나였던 시대에
의사와 더불어 동일한 작업을 행했던 이발사의 역할 표시로 혈맥과 신경을 상징했던 색감의 회전을 넣은 이발관 기둥은
그 자체로 의학의 무지를 인증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발관은 그 기둥을 자신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본편이
취하는 조롱은 흑백 필름의 사용이다. 청색, 홍색, 백색 등은 보이지 않고 오직 흑백만 보일 때 그 회오리의 끝은 마치 UFO의
실체처럼 포착할 수 없는 물 자체로서의 미지에 속한다. 구치소의 꿈에서 에드가 UFO의 불빛에 갇히는 것이 그의 존재론이다.
다른 존재론은 가능한가? 에드의 처남 프랭크는 파티에서 블루베리 파이 많이 먹이 대회에서 우승하고, 아내 도리스는 막
결혼한 부부에게 악담을 퍼붓고 만취하고, 백화점 사장 빅 데이브는 상상과 허풍을 섞어 인육을 먹는다를 형편 없는 음식의
비유어로 늘어놓고, 빅 데이브의 아내는 이 모든 사건이 UFO의 음모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탁월한 변호사 리든쉬네이더조차
폭식을 하는데, 도리스와 빅 데이브와 리든쉬네이더는 모두 자본의 욕망에 쫓긴다. 그들 중 가장 현명한 이는 리든쉬네이더인데
그는 애당초 진실 따위에 관심조차 없고 그것을 왜곡하여 포장 설득하는 기술을 연마한 변호사로서의 지위에만 집중한다.
그러므로, 서두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에 해당한다. 빅 데이브는 사건의 실체를 아는 듯 하지만,
그 역시도 어떻게 에드가 협박편지를 보냈는지에 대한 망상을 알지 못한다. 도리스 역시 남편 에드의 살인을 완벽히 알 수 없다.
사기꾼 크레이튼이나 처남 프랭크 등의 부차적인 인물들은 이 정도 선에 근접할 수도 없다. 남은 것은 결국 말이 없지만, 극의
나레이션을 담당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관객에게는 가장 말이 많은 인물로 호명될 에드인데, 그 역시 아내의 불륜남을 모른다.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자라나는 머리카락처럼 진실은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 적어도 그것을 인지한 이는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니, 전기 의자에 사형 집행된 에드가 흑백 필름 안에서 꺼꾸로 하얀 빛 속으로 소멸되었다는 점은 오히려 아늑함이 된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자신의 살인에 의해 오판된 타인이 자살하고, 타인의 살인에 의해 오판된 자신이 죽는 집행극이며
아무리 잡으려해도 날아가버리던 <밀러스 크로싱>의 모자처럼 영원히 자라날 머리카락의 심연에 묻혀버릴 불가지론이다.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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