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문쥬 1 - 4개월, 3주....그리고 2일//신의 소녀들

나는 이제까지 그를 2번 만날 수 있었다. 

크리스티안 문쥬는 1968년생이다.

 

  1. 4개월, 3주....그리고 2일   4 Luni, 3 Saptamini Si 2 Zile (2007)

  :   낙태를 잉태한 시대가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의 해답이 법의 경계뿐만은 아니겠지

영화 속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낙태된 태아의 시체일 것이다.

굳이 감독이 고어에 가까운 형식을 차용한 이유는 단지 낙태 논쟁을 불붙이기 때문은 아니다.

1987년과 루마니아라는 공간에서의 낙태는 분명하게 독재정권의 붕괴를 은유한다.

물론, 동구권과 소련식 공산주의 몰락의 사회과학적 분석은 이 영화의 몫을 넘어서는 일이다.

좀 더 세심한 관찰력이 있다면 장면의 이음새와 인물 구성을 구체적인 역사와 겹쳐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깐느의 선택은 우리가 '밀양'을 선택하는 이유와 동일한 지점에 서 있다.

유괴와 낙태, 어느 쪽이든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치유할 수 없음에 머물 때

삶은 매순간 미시적으로 조종되어 발을 뺄 수 없는 정치적인 수렁으로 읽혀질 것이다. 

단지, 연기만으로 따진다면 전도연의 수상은 명확하다.

 

두 여성의 유일한 아군이자 뇌물이며 동지적 표지로서 담배는 인간 정서의 보충물로 기능한다. 

이 어지러진 기숙사의 책상 위 사물들이 어떻게 안정된 호텔의 식탁으로 변환되는지 지켜보자.  

 

낙태를 하러 온 남자는 독재정권을 은유하는 화신으로 쉽게 등식화되면서

그 비이성적인 잔악함을 표면화하기 위해 자본과 여성의 몸을 태고적처럼 교환한다.

푸른 화장실 벽돌과 금발 머리, 녹색 상의의 결합으로 더러운 관계를 환하게 역설시킨다. 

얼마나 많은 강간 영화에서 여배우의 처절한 연기력만으로 저 장면을 채웠는가를 돌이켜보자.

 

정권내 대학졸업자 등으로 구성된 지식인층의 만찬을 너무나 오래 카메라 안에 담는다.

빨간 옷의 어머니와 초록색의 애인, 그리고 파란 색의 아버지 사이에 낀 남자는 내내 벙어리이면서

남녀가 연애를 하게되었을 때 부딪히는 미래와 가족 문제의 솔직한 대화에도 제대로 응하지 못한다.

 

직접적으로 정권내 일반 하위직 노동자와 지식인 노동자 사이의 간극을

10분 이상 만찬을 통해 드러내는 문법은 작품 내에서 휴지기 이상을 지나쳐 부담스럽다.  

 

감독으로서 관객으로서 가장 기대되는 장면이며 동시에 가장 처리가 어려운 장면이라 할

태아를 넣은 가방을 들고 루마니아의 밤을 돌아다니는 주인공 여성을 쫓아가는 시선은

불빛과 인간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낡은 건물 안에서 오직 절망만을 껴안고 방황한다.

역시 '밀양'의 한 장면이 대비되어 떠오르는 이 장면이야말로 이 작품의 화룡정점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선택을 힘들게 지켜보기의 고난은 유사 이래 한번도 제대로

풀린 적이 없는 난제를 관객에게 다시 던져놓는다. 

 

그리고 지난 일은 다 잊을 수 있다는듯 이 쪽을 지긋이 응시해야한다.

몇 초간의 짧은 시간만을 허용한 여주인공의 부인하는 듯한 정면 시선은

대개의 정치적 사실주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거울-스크린-관객의 반복 차용이다.

 

3편의 루마니아 영화가 성취한 결과물에서 더 높아진 층위의 다른 각도에서

만들어질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것은 괜한 의구심을 넘어설 수 있다.

  

2. 신의 소녀들 Dupa dealuri, Beyond the Hills (2012)

​  : 검둥개, 붉은 차 그리고 경찰, 병원, 죄목이라는 동시대 루마니아 감독들의 돌림곡

 

불필요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

수녀원, 비구니 사찰, 여죄수 감옥, 궁녀 숙소 등에서 밀려나오는 두려운 성정치학은 레즈비어니즘이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이는 다름 아닌 남성 집단이다, 그들은 여성 동성 집단 간의 성적 밀착을

남근 사회 지배에 대한 왜곡된 저항의 일종으로 보려하기도 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남근의 지배를 고착화시킨 자부심이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옮겨진 것을 수도 있다.

더하자면, 본편의 배경이 여성 수도원 이야기라고 해서

프레드 진네만의 <파계>나 피터 뮬란의 <막달레나 시스터즈>를 연상할 필요는 없다.

 

크리스티안 문쥬는 전작에 이어 다시 한번 겉테두리 상의 주제만으로 한정한다면

루마니아 사회를 수도원이라는 고립된 공간과 결부시켜서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권하거니와

이는 전작과는 달리(?) 인간 군상의 미숙하고 타락한 존재론이라는 보편성으로 읽기라는 편리한 양가성에 몸담는다.

물론, 감독의 이같은 주제 상의 방침보다 작품의 재질이 빛나는 것은

극악한 상황 하에서 어떻게 주요 인물들이 시시각각 발작하고 변질되는가에 있음은 불문가지다.

그것은 이미 그 해 깐느의 선택을 받은 전작 <4개월, 3주....그리고 2일>에서도 충분히 지난하게 증명된 바 있다.

 

두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작의 인물 구성이 공유된다면,

전작에서의 죽음이 이번에는 당사자 여성에게서 발생한다는 점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상처를 악화시킨다.

여기에 동원되는 가장 극악한 인물이 남성 지배자(종교, 의학 권력자로서)인 것은 동일하다.

물론, 아직 남성 지배자가 곧바로 루마니아 정치 사회 집단으로 성정치화되는 것을 극명화하지는 않는다.

( 영화가 조사를 받으러가는 차 안에서 종결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프닝으로 들어가보자.

검은 옷의 한 여성의 뒷모습이 양쪽 열차에서 내려 카메라 정면으로 걸어오는 군중 사이에서 반대편으로 나간다.

이같은 카메라 조감도는 꽤 여러번 장르를 불문하고 사용된 바 있는 상징 방식이다.

가령, 앞으로 오는 군중과 뒤로 가는 여성이라는 대립항은 그녀와 군중의 분리를 뜻하면서

보다 더 깊숙히 읽자면 그녀의 진로가 장르에 따라서 진실 탐구 혹은 허위에의 집착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게다가 그녀와 군중의 양쪽에는 열차가 있으니, 주인공 여성 보이치타는 한마디로 사방으로 포위된 채 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주인공 여성의 친구이자 본편의 분열상을 초래하는 또다른 주인공 여성 알리나가 등장한다.

문제는 그녀가 아무 생각없이 철도를 건너 친구 보이치타와 포옹을 할 때 기차가 바로 뒤를 지나간다는 점인데,

이 간발의 죽음의 위기를 영화는 정확히 관객이 포착하지 못하도록 강조점을 주지 않는다.

여기서 기차와의 충돌 위기라는 복선은 당연히 알리나의 죽음을 알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버스 안에서의 알리나가 보이치타를 바라보는 눈길은 분명 동성애적이고

그들이 도착하는 수도원 문 앞에 걸린 "이교도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을 보면 이제 영화가 

무의식적으로 여성 동성애와 카톨릭의 종교 규율적 갈등으로 치닫지 않을까 쉽게 예측하는 부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얼핏 수도원을 지배하는 신부와 보이치타와의 관계를 성적으로 제단, 질투하는 알리나의 행태를

첨가함으로서 2008년의 할리우드작 종교 스릴러 <다우트>를 연상하게한다.

 

하지만, 영화가 가려는 방향은 이같은 일반적인 관객의 호기심을 뭉개고 오히려 좀 더 정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하나의 집단과 그 집단에 반하는 외부인이라는 갈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은 웨스턴의 무법//합법 - 정착/이탈이라는 이분법과도 설핏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본편은 사회 고립극이지 웨스턴의 신화가 아니기에 외부인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오히려, 본편의 미스테리한 방점은 집단 그 자체의 가능성이 아니라   불법성 혹은 이단성에 있다.

영화는 흔히 작가주의 영화들의 공고한 형식들이 그러하듯이 몇몇 중요한 지점에 이르면 해설을 생략하거나 덮어버린다.

가령, 수도원의 지배자인 신부는 교구 신부로서 월급을 받지도 않고, 약속한 주교는 오지 않는 등

슬쩍 이 수도원 집단의 종교적 정통성을 의심하게되는 실마리를 뿌린다.

돌려 말하자면, 수도원 그 자체가 광신도 혹은 이교도라는 뜻인데, 이는 주제상으로 접근하자면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수도원이라는 루마니아 혹은 현실 그 자체의 존재 불구성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인공 보이치타가 혼자 수도원 밖 언덕에 올라 앙상한 나무 옆에서 먼 곳을 응시하는 뒷 모습이 지나가면

그녀는 나즈막히 "이제 가자"라고 말하는데, 그 공간에서는 오직 그녀 외 에 다른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뜬금없는 장면의 삽입은 흔히 앞 뒤 장면과의 접합 에서 의미를 부여받게되기 마련인데,

이 시퀀스는 그같은 영화의 기초 언어와도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번역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의문은 두 가지이다.

"이제 가자"에서 빠진 것은 주체와 방향이다. 즉 누구에게 말한 것이며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라는 말이다.

 

만약 이 장면이 오프닝과 동일한 복선이라해도 일종의 꿈 환타지적인 요소로서도 다소 당혹스럽다.

보이치타는 이미 친구 알리나가 죽을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알리나는 유령처럼 언덕 어딘가에 있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어디로"라는 목적 혹은 방향성인데, 여기서 영어 제목을 돌이킬 필요가 있다.

 

<Beyond the Hills>을 어떻게 해석하든간에 원제의 언덕은 분명 이 시퀀스에 상당한 주제적 무게감을 부여함을 알 수 있다.

" Beyond"로 좁혀진 중점에서 과연 '언덕을 넘어서'로 해석한다면 여기서 '언덕'은 '수도원=루마니아=현실'일 것이지만

'넘어서'라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왜냐 하면, 본편은 전술했다시피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 Beyond"는 상당히 복잡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넘어서"라는 해제를 풀어낼 고민이 없음을 결말까지 가지 않아도 능히 알 수 있다.

결국, 영제는 단순히 선언적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알리나와 수도원 신부 혹은 수도원 자체의 갈등과 악마 만들기와 퇴치하기라는 전근대성은

영화의 주 뼈대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긴장감보다는 지루함을 안긴다.

알리나와 보이치타가 잠시 수도원을 벗어나 입양된 가정으로 찾아가는 시퀀스 역시 무리하게 사회적이고,

병원에서의 치 료 과정 또한 세심하다기보다 투박하여 스스로를 격이 떨어지는 사회드라마로 만든다.

 

특히 중반과 결말 병원 시퀀스에 이르면 감독 크리스티안 문쥬가 자신과 더불어 각광받았 던

동시대 루마니아 감독 들의 작품 속 세계를 고의적으로 자기 안에 반복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병원 장면에서의 무성의한 치료와 병원 의사의 정확한 진단명을 말하지 않는 장면,

마치 귀찮은 환자를 쫓아내고 수도원으로 맡겨버리려는 듯한 비과학적이고 몰의학적인 언행 등은

곧바로 2008년에 국내 개봉했던 크리스틴 푸이우의 2005년작 <라자레스쿠씨 의 죽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루마니아의 사회 의료체계에 대한 비판의 어조가 반복될 필요가 있는가는 별도의 문제가 될 정도다.

 

정작 본편을 확연히 감싸는 다른 감독의 그림자는 코르넬리우 포물보이우의 <경찰, 형용사>에서 찾을 수 있다.

위 장면에서 닫여있 어야될 병실의 문은 곧 의사가 방문한 이후 기이하게도 열려있는 상태를 지속하는데,

이는  <경찰, 형용사>에서 주인공이 수없이 반복했던 '닫고 열고'의 사회적 폐쇄감을 연상시킨다.

극 중반에 수도원 여인들의 말잇기 놀이나 죄목을 일일이 읽고 해당 사항을 기록하는 시퀀스는

영락없이  <경찰, 형용사>에서의 중반과 결말부 사전을 펼친 채 행해졌던 언어 놀이를 통한 허위의식의 조롱을 떠올리게한다.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좀 더 다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았을까 답답했는데,

굳이 다시 병원에 가서 죽음을 확인하고, 다시 경찰이 수도원에 내방하고,

신부를 비롯한 몇몇 수녀들이 경찰차에 타고, 등짝에 선명 하게 Politist 라는 경찰 표시와

흙 탕물이 튀겨진 이후 그것을 닦아내는 윈도우 브러쉬 등은 코르넬리우 포물보이우의 <경찰, 형용사> 을 떠올리게 한다.

 

<경찰, 형용사> 역시 마약범의 진위에 대한 미궁을 담은 사건 서사로서 어색한 본질에의 미궁을 탐색했다면

본편 역시 수도원 자체의 존재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 사이를 애매하게 오간다는 점이 공유된다.

여기서 허실은 이같은 동료 감독들의 유명작들을 차용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본편 안에서 삽입될 때 외려 영화 자체의 짜임새를 떨어뜨리거나 뜬금없이 발작하는 듯 보인다는 점에 있다.

차라리, 알리나의 죽음 이후 그녀를 수도원 자락에 묻고 다시 수도원이 예전처럼 유지되는

진부하지만 잔인한 엔딩이야말로 구차한 병원, 경찰의 부가적인 출현보다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막판에 보이치타가 알리나의 옷을 입고 나서는 장면은 다소 저렴하고 유치해보였는데,

감독은 끝까지 그녀가 수도원의 교리에 반목하려는 의지가 확고한지를 명확히 하려 하지 않는다.

경찰의 질문에 카메라는 대답하는 그녀의 곧은 안면을 촛점화하기는 하지만,

이에 대응해야할 신부와 다른 수녀들의 얼굴을 생략함으로서 대결 구도를 생략해버린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믿음 안에 있고, 단지 알리나는 자신의 본바를 말할 뿐이다.

 

물론, 이제 그녀의 언행을 지배하는 신부의 '허락'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엔딩이 차량 안에 탄 신부와 수녀들 그리고 알리나의 면면들에 주목하지 않고

앞 좌석에 앉은 경찰의 뒷모습으로 처리될 때 이것은 불안하고 우울한 지속이라는 현실 속에서

수도원으로 대표되던 이제까지의 한바탕 연극이 무의미함을 선포하려는 웅장함으로 가득차다.

이같은 엔딩에 대해서 찬반 논의가 어떻든간에 나로서는 크리스티안 문쥬의 작법이 지나치게 구태스럽다고 느꼈다.

 

 

<신의 소녀들>은 루마니아를 넘어 현실 내 존재들의 불법적이고 이단적인 양태들을 고발하는 진전을 보이지만,

동시대 루마니아 감독들의 전작들에 대한 기시감이 불필요하게 묻어나는 구식 작가주의의 존재 증명극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