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7 - 덩케르크

나는 이제까지 그를 10번 만날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1970년생이다.

2017년 97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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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덩케르크  Dunkirk   (2017) : 패자에서 승자로의 자기 분열 찬가

삐딱해지고싶었던걸까, 감독 혹은 나는. 전쟁 장르극의 새로운 면모와 세 가지 각기 다른 시간의 축의 접합이라는

열광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세계에 정좌한 이들에게는 파편적인 수사에 불과할 수 있다. 문제는 오히려 빈곤에

있다. 왜 본편은 빈곤한 광경과 서사를 고집하는가? 이것은 단순히 제작 여건이라는 영화외적 압박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논점을 대면하지 않고서 본편에 파리어(톰 하디 역)의 전투기처럼 기이한 안착을 할 수 없음도 분명하다.

관람 전후에 song님은 실제 덩케르크의 전쟁사 지식을 들려주셨는데, 히틀러의 퇴각 허용에 대한 의문이 주 뼈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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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같은 영화외적 전쟁 후일담과는 별개로 본문은 오직 크리스토퍼 놀란의 기존 세계와의 맥락으로부터 추출된다.

기본적으로 장르란 감독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취하는 의상일 뿐이니, 전쟁물로서의 성취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감상으로서의 의미가 없지 않겠지만, 그 내부에 내포된 음성을 청취하는 바를 게을리하는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미행> 이후 <인터스텔라>까지 감독을 관통하는 열쇠는 분신이고 이를 가장 극열하게 드러내는 것은 <프레스티지>이다.

그의 배트맨 연작에서 낮/밤을 비롯한 이분법적 변신은 이의 히어로 장르적 작법이고, <인셉션>은 몽환적 미궁이다.

우주 가족 오페라에 가까운 <인터스텔라>조차 아버지 쿠퍼는 자신의 자리를 분신화하여 재발견하는 서사로서 가족/세계

구원의 테마를 완성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세계에서 인물이 승자 혹은 패자로 이동하는 방향성으로서의 영웅 서사보다

주의할 것은 과연 그것이 말끔한가라는 쾌감의 은폐된 찌꺼기에 있다. 가령 <다크 나이트>에서의 결단은 저열한 공동처잭

정의론을 떠나서 관객을 윤리의 편안함으로 유도했는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감독의 세계 전반이 완성된 퍼즐

한 구석에서는 언제나 불쾌한 어둠의 미진함이 묻어있었다.  이를 장르적인 미장아빔 속으로 구속한 것은 <인셉션>이다.

본편은 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리얼리즘을 취한 반동적 어법이다. 관객이 영화 전후에 취하도록 강요받은 사실 혹은

진실은 이렇다. '그들은 퇴각하였으나 성공적이었으로 마침내 승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에 영웅 서사를 부가한다.

하지만, 정작 영웅은 그 곳에 있었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초라해진다. 서사의 빈곤함에 대한 질문은 여기서부터 맥락화된다.

최근 국내 소방관 충원과 관련해서도 언급되었듯이 영웅은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문장에서 방점은 '맡은 바'이다. 여기서 영웅의 윤리는 혼돈에 빠지고, 이른바 주체로서의 정체성은 상실과 분열로 치닫는다.

본편에서 독일군이 엔딩시까지 거의 보여지지 않았다는 점보다 중요한 것은 엔딩에 분명하지 않은 흐릿함과 추정으로 독일군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왜 그들은 거기 도착했을까라는 질문은 공군 파리어는 영웅인가로 이어지고 이는 곧 그는 왜 비상탈출이

아닌 착륙을 고집했는가로 귀결된다. 어느 쪽이 더 드라마틱한 영웅 서사의 쾌감에 적합한가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지만,

폭격기 요격과 연료의 잔량 사이를 고민하는 그의 면모에서 어느 순간 자폭 영상이라는 가학성을 망상하는 관객의 자리는

기이했다. 왜 파리어의 죽음을 원했을까? 이는 그가 본편에서 가장 짧은 시간과 공중이라는 특별한 신적 공간에 연관된다.

​ 영웅은 신적 활공이 가능함으로서 추앙받는다. 파리어에 대한 찬양을 위해 해군장군 볼튼(케네스 브래너 역)의 눈감음의 의식이

배치되고 군인들의 환호도 추가된다. 이에 반해 그의 조종사 동료는 같이 귀향한 육군들에게 힐난을 당하는 면모를 상기해보자. 

물론, 파리어는 무모한 이념적 순교자로서의 자살특공대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그 이유는 의외로 비장함의 탈색에 있지 않다.

파리어의 생존에 대한 질문에 이런 반문이 가능하다. 왜 파리어는 요격이 종료된 이후 비상 탈출을 시도하여 퇴각하는 해변의

아군에 합류하지 않고 비행기를 적진인 모래사장 위에 착륙시키는가? 이에 대한 마땅한 답변을 착안하는 것은 관객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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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웅들은 죽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속에서 배제당하고 영원히 속박되더라도 생존해야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파리어의 자살 폭격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발적 포로화를 유사 죽음이 아니라고 단정할만한 이유는

존재하는가? 게다가 거기에는 이제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적군의 '흐릿한' 실체로의 등장이 부가된다. 되돌아가서 본편에서

가장 짧은 시간을 부여받고 그 자신이 다른 시간대의 인물들과 직접적으로 연류되지 않는 이는 파리어뿐이다 그는 단독자다.

동료 비행사는 2차 시간대인 도슨 선장의 어선에 의해서 구출되지만, 파리어는 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인사를 보낼 뿐이다.

결론은 돌아가지 않음이라는 결정이다. 그리고 탈출 이미지를 전시하지 않겠다는 감독의 의지는 파리어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그는 승리함으로서 영웅화되지만 결코 완벽하게 안정화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바로 본편의 좌표와도 등식화된다. 파리어는

표면적으로 이겨야하지만 또한 패배해야한다. 그것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세계 속 영웅의 실체다. 파리어의 전투기가 적군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격추시킨다고해도 덩케르크 전투 자체의 패배를 반전시키지 않는다. 다만, 그는 패배 속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이는 후술하겠지만 단순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한다'는 식의 생존 선의의 이데올로기와도 합일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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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것은 배트맨식 영웅 성장담인가? 감독은 전작 배트맨 시리즈 중 2편에서 배트맨을 성장을 위한 훈육의 공간으로

밀어넣었다가 복귀시킨 바가 있다. 하지만, 파리어는 그같은 과정이 없다. 단지, 그 스스로 생존보다는 유사 죽음으로서의

패배를 택할 뿐이다. 영화는 파리어에게 이같은 전체로서의 패배 하지만 단면으로서의 승리라는 이중성으로의 운명론을

기입한다. 그는 안전한 탈출이 아닌 포로화로서의 패배를 자인함으로서 덩케르크 퇴각 작전의 신화성의 아이콘이 되고자한다.

이같은 얼개로부터 다른 두 비선형적인 시간대는 해제 가능하다. 두번째 시간대인 도슨 선장의 바다에서 가장 중요한 논제는

조지의 죽음이다. 그는 갑자기 어선에 합류하고 거의 확인되지 못할만큼의 짧은 순간의 사고로 죽음에 처하며 영웅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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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는 운명 직전에 놀랍게도 '죽을' 자들만의 고전적 특권과도 같은 자기 연설을 늘어놓는다. 그 시작은 '앞이 안보인다'이다.

​이는 다른 독자들도 평했듯이 결말부 영국으로 귀환한 군인들에게(이를 패잔병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모포를 나눠주는

시각 장애인 노인(그는 감독의 친삼촌으로 놀란 일가 중 한 명이다.)으로 연결된다. 두 사람은 왜 앞을 볼 수 없는가가 아니라

봐서는 안되는가에 집중하자면 대답은 이미 북귀군인인 알렉스의 자조적인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사 자체보다는

왜 그같은 의식을 알렉스가 가지는가에 있다. 그는 생존을 위해 프랑스군 깁슨(?)(은 본명이 아닐 수 있다.)을 희생시켰다.

이전 구축함 장면에서 깁슨이 알렉스 일행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닫힌 철문을 열었던 장면의 윤리적 대척점에 알렉스가

있다. 즉 알렉스는 진정한 패배자이다. 그와 동일한 인물은 킬리언 머피가 맡은 영국군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조지를

죽음에 이르게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광적으로 집착한다. 그는 일종의 전쟁 트라우마의 현재형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두 인물이 두 명의 전쟁 패배자이면서 동시에 생존자인 이들과 연관되는 이유는 전술한 본편의 정체성인

패배자로서의 승리라는 모순성의 단면과 직결된다. 즉, 두 사람의 시각 장애는 앞-진실을 봐서는 안되고 회피해야할 이유다.

조지가 결코 어떠한(?) 영웅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단지 자기 성장적이면서 동시에 충동적인 동참을 했지만 그의 역할은 결국

전쟁으로 인해 윤리와 의식을 상실한 패배자로부터의 피해자적 증인이다. 비록 그가 장황한 자기 촤면적인 유언을 통해서

이를 감량시키기는 하지만, 실체로서의 진실을 위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감독과 관객은 덩케르크를 단순한

패전과 퇴각이 아닌 승리하는 탈주로 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로부터 생성되는 모순의 아이러니를 마냥

외면할 수 없고 그것이 본편의 서사가 가지는 미학적 입장이다. 그 정점이자 수미상관의 주인공의 위치에 무명 용사가 있다.

기이한 것은 본편에서 핀 화이트헤드가 맡은 병사는 자신의 이름을 호명받지 않는다는 점이 아니라 왜 엔딩 타이틀에서 그를

'토미'로 배정한다는 것에 있다. 즉, 감독은 그에게 극중에서는 불려지지 않았던 이름을 부여해야만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초반부에서 토미는 배변을 하지 못하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프랑스군 깁슨과 환자 후송을 통해 구축함에 승선하려다 실패한다.

이후 그의 행적은 거의 선박 재난 영화와 서바이벌 장르극의 대리체험적 육체로 구성된다. 즉, 토미는 결코 영웅으로서 묘사되지

않는 패배한 전쟁의 증좌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알렉스 등으로부터 부대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험에 내몰리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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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는 결국 깁슨을 구하지 못한 채 도슨의 어선에 구출되지만, 그 과정에서 석유를 뒤집어써야한다. 이 석유는 시각 장애의

또다른 이미지다. 그들은 도슨 선장과 아들 피터가 조지의 죽음을 초래한 킬리언 머피가 맡은 병사에게 진실을 발설하지 않듯

감히 깁슨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이 뒤집어쓴 석유는 그같은 패배자로서의 윤리 폐기의 낙인이 된다.

하지만, 조지가 지역 언론에서 사건의 실체와는 상관없는 영웅으로 기록되듯이 토미는 신문의 처칠 연설을 낭독하는 자로서

자신의 패배자적 위치를 승리자의 좌표로 뒤바꿔놓은 뒤에 기어이 엔딩 타이틀에서 이름 토미를 부여받아야만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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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어, 조지, 토미라는 세 인물 외에도 본편은 가장 선명한 패배자적 선언을 이미지화한다. 그것은 곧 서사의 빈곤만이 아닌

이미지의 빈곤이다. 애당초 3만명이 목표였던 퇴각 구출 작전에서 귀환한 병사는 30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정작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바다의 어선은 그만한 인력을 구출할만한 드라마적 쾌감을 전달할 수 없는 수십척에 불과하다. 왜 바다는

어선으로 가득 채워지는 감동을 포기하는가 혹은 전투기는 왜 겨우 3편 뿐이며 그 중 한대는 거의 소개되지도 않고 추락하는가?

CG 보다는 실사를 중요시하는 감독의 지론 탓이거나 제작 여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는 노골적인 패배자적 빈곤이다.

감독은 승리의 시각적 괘감을 완전히 승인하지 쉽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처음 도전하는 전쟁물 장르에서 승리가 아닌

퇴각물을 선택한 맥락에서 연유되는데, 전술했듯 덩케르크는 패배했지만 생존함으로서 승리를 자축하는 모순적인 장소성이다.

덩케르크의 이같은 성격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등의 히어로 장르물과 <미행> 이후 <인터스텔라>까지 자기 분열하는

남성성들의 미궁을 통해서 전달하려는 패배자적 승리의 찬가와 합일된다. ​우디 알렌의 아이러니와는 다른 장엄한과 숭고함이

표면을 뒤덥지만 감독의 남성들은 이같은 모순안에서 심리적으로 도플갱어된다. 본편의 빈곤은 그래서 매우 진실한 전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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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는 패배했지만 승리했다고 자축하고자 하는 역사적 공간을 빌어와 자기 분열하는 남성성을 증언하는 미궁이며

서사와 이미지의 빈곤을 노골적으로 선택함으로서 이로 인한 자괴감을 조금이라도 경감시키려는 자학적 퇴행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