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11 - 마다다요

나는 이제까지 그를 30번 만날 수 있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1910년에 태어나 1998년에 사망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장편 극영화 30편을 비로소 모두 만났다.

2007년 오즈 야스지로의 국내 소개된 장,단편 34 작품을 빠짐없이 만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행복이었다.

전술한 구로사와 아키라 작품에 대한 천박한 10개의 감상문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30. 마다다요 まあだだよ Not yet(1993) : 나는 그를 모두 만나서 고양이가 되었다.

  

다만, 힘, 꿈, 허무, 전통, 아버지, 남성, 스승, 그림자, 빈민, 회복.....

이 단어들의 순열을 따라간다면 누구든 그의 발끝 어딘가에 도달하게 됨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사요나라!' 구로사와 아키라가 아니라 왜 '마다카이' 구로사와 아키라인가?

그것은 오직 이 영화를 보신 분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화적 어감이자 주제이다.

"마다카이"는 "준비 되었냐?", "마다다요"는 "아직은"이란 뜻의 일본어임을 미리 밝혀둔다.

 

83세의 노구가 된 구로사와 아키라는 무엇을 말했을까?

스스로 아마도 마지막 영화가 되리라 예감했을 작품에 거장은 무엇을 담아놓았는가?

표피적으로만 따지자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가장 낯간지러운 작품이지만,

동시에 그 스스로 행복에 젖혀 풀어놓은 인생에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본편은 한마디로 구로사와 아키라가 자신에게 바치는 자화자찬이고,

동시에 부끄럽지 않은 영화 인생에 대한 자기 긍정의 세계를 담고있다.

그것은 홀로 나무를 심으며 스크린 너머로 공포되는 묵직한 영화 신학이나

조용히 개 한 마리와 바닷가를 산책을 하며 시처럼 읊어지는 이미지의 수사학이라기보다

떠들석하게 후학들에게 인정받고 그들로부터 언제나 살아계시라 찬사받는 늙지않는 노인의 일성이다.

 

문이 닫혀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는 고등학생이다.

학생은 아마도 "그가 온다"라는 말을 하고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문은 여기서 스크린 즉, 작품의 첫 시작이며 더 나아가 하나의 영화 세계를 지칭한다.

 

학생 다음에 문을 여는 늙은 선생이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그는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분신이다.

즉, 감독은 세로의 강건한 선들과 푸른색 문을 열고 일본 영화계 아니 세계 영화계로 들어선

구로사와 아키라 자신의 대담하고 굵은 스스로를 바로 인정하고 시작한다.

 

담배연기라고 말해진 하얀 연기가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전쟁작품들에서 보였던 안개처럼 피어오르지만,

이 작품은 "카케무샤"와 "란"의 세계라기보다 "꿈"과 "8월의 광시곡"에 이어지는 세계다.

연대기순으로도 그러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대작 연출에는 제작비나 힘이 부친

노익장의 선택은 자신을 돌아보고 일본을 다시 돌이켜보거나 내다보는 길의 소품들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페르소나라 할 영화 속 늙은 선생의 첫 대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기는 항상 위반하고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라는 말은 의외로 아키라-월드와 들어맞지 않는 듯 하지만,

스스로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모색하고 시련을 이기고 돌아온 자신을 소개하는 말로는 한편 적합하기도 하다.

 

영화는 1943년부터 시작한다.

1943년은 구로사와 아키라가 그의 장편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를 발표한 해이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시작부터 정말 다시 돌이켜보고싶었던 것이다.

 

극중 선생의 직업은 독일어 교사이고 책도 제법 저술한 지식인이다.

여기서 그는 독일어/교사라는 선택을 통해서 두 가지를 다시 부인하지 않고 나선다.

즉, "가장 아름답게(1944)"라는 전쟁 홍보 영화에 대해서 그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설정이거나

혹은 극중에서 나오듯 "파우스트" 등의 독일 희곡들과 자신의 영화 세계를 나란히 세우려는 자부심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방점은 "독일어"보다는 "교사"에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된다.

그는 "붉은 수염"을 비롯한 "주정뱅이 천사", "들개" 등등의 작품에서 언제나 전후 복구의 스승을

늙고 지헤로운 남성에게서 찾기를 염원해 마다하지 않았던 바를 상기한다면

이번 작품의 "독일어 교사" 직업의 주인공은 그의 시작이자 끝의 동일선이다.

 

그리고, 그의 은퇴를 만려하는 고교생들이야말로

이제껏 일본 영화계를 이끌었던 노장의 가르침에 혜안을 얻은 후인 감독들이자 관객일 것이다.

그들이 모두 검정색 교복을 입고 정확한 경례로 허리를 굽힐 때

 

하지만, 영화는 이어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마다다요" 즉 "아직은 아니다 Not yet"  그 자체일 것이다.

 

1993년 같은 해 발표된 후배 재일 한국인 감독 최양일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의 작품론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질긴 재일 조센징의 생명력을 은유하는 형식과 전개였다면,

노장의 이 작품은 역시 10분이라는 짧은 단편으로도 충분히 전해질 이야기를 소소하게 이어간다.

이제 더해질 것은 일종의 부연이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거울이 될 것이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중년의 제자들이 스승의 새 집으로 도둑을 가장해 시험해 들어오는 시퀀스인데,

여기서 우선 기억해야 할 것은 극중 선생의 별명은 "순금"이라는 것이다.

위 일본어 한자는 "도둑입구" 즉 도둑이 들어오는 길이라는 뜻으로

주인공의 별명과 더불어 곧게 한 길로 타인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온 강직한 성품을 드러낸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스스로를 순금과 같은 불순물이 없는 인품으로 평가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여튼 영화는 주인공에게 주위를 탓하지 않는 인간성을 부여한다.

 

2차 대전의 여파로 작은 집에서 부인과 함께 거처하는 주인공의 처지로 영화는

잠시 힘들었던 구로사와 아키라의 침체기를 연상시키게 한다.

최초의 칼라극 "도데스 카덴"의 실패 이후 "데루수 우자라"로 복귀할 때까지

그는 한 번의 자살 시도를 비롯해서 심적 물적으로 고통의 시기를 보냈는데,

이 시기의 자신을 물적으로 돌이켜보는 시퀀스가 바로 이것이다.

 

조금 비켜나가자면, 동일한 단락에서 두 가지 구로사와 아키라의 쟁점을 다시 만날 수 있는데.

하나는 그의 작품 속 여성관이 그것인데,

위 장면처럼 영화의 거의 유일한 여성이라고 할 주인공의 부인은 제대로 대사도 부여받지 못하고

그저 남편의 옆에서 조용히 내조만을 하는 수동적인 모습만을 부여받는다.

 

"우리 청춘 후회없다", "가장 아름답게", "거미집의 성"에서의 강인하고 유혹적인 그녀들보다는

"스가카 산시로"에서 시작되어 "8월의 광시곡"으로 이어지는 인고하는 여인상으로 다시 되돌아온 느낌이다.

마초 중심적이며 가부장제에 한정된 작품들을 내걸었던 감독의 마지막 길에서 여인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더 주목할 것은 다른 분야에 있다.

극 중에서 이 부부에게는 자손이 없다, 도대체 아들이나 손녀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식을 가졌는지조차 전혀 언급되지 않을 정도이다.

 

혈연으로서의 후대를 대신하는 존재가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의 영화적 가족이기 때문이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4명의 제자 남성들과 무수한 제자들의 방문과 도움(거의 숭배에 가까운)은

구로사와 아키라 스스로 후배들에게 이 정도의 인정은 받고 있다는 자평이라고 해야겠다.

 

전쟁은 끝나고 미군정 치하의 일본에서 잔치는 벌어진다.

차라리 하나의 독립된 단락이라고 해도 좋을 회갑연 시퀀스는 두 가지 점에서 노골적이다.

 

하나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은 작품 전반에 완전히 드러나있는

감독 자신의 자찬과 후배들로부터의 인정이 축제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들이 부르는 스승의 은혜 류의 노래와 "하나!둘!"의 후렴구가 붙은 노래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자신이 설파하는 보수적인 가치관,

그것이 어떤 정의인지 가름하기 어려운 관념적인 건강한 일본

부정부패가 없이 성장하는 국가 건설이라는 염원이 그것이다.

 

전자와 후자는 달과 태양이라는 상징과 만나는 데,

스스로를 쟁반 모양의 보름달과 동일시하는 장면은

차라리 일본 영화계의 천황이라는 좌표와 어긋나게 만난다고 해도 좋겠다.  

 

영화 후반부 다시 반복 재현되는 생일 잔치에서

제자들의 "마다카이- 아직도 그만두실 때가 되지 않았나요?" 생략됨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 큰잔 맥주를 다 마시고 "마다다요 -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를 외치는 장면은

재삼 말하지만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고 저토록 행복한 말년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음에 부럽기도 했다.

 

이 잔치는 77번째(50년의 시간동안 30작품을 했음을 생각한다면 왜 80번째가 아닌지 의아하지만)이다.

행운의 7 럭키를 두번 강조하는 이유는 끝내 영화 내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8월의 광시곡"에서 리차드 기어는 미국의 원폭 투하를 반성하는 사신처럼

일본인 원폭 피해 가족의 할머니의 손을 꼭 달빛 아래 잡아 주었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혹은 세계인으로서 그건 그리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었다.

 

위 전후 미군정 치하의 회갑연에서 주목해야할 장면은 따로 있다.

요란한 생일 잔치 소리에 출동한 두 미군 병사의 웃음과 인정의 표정이다.

기억하자면, 199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자리에 스티븐 스필버그와 죠지 루카스가 노구의 구로사와 아키라를 에스코트했음은 유명한 일화이다.

게다가 그 자리는 마침 그의 80세 생일이었고, 그 자리의 모든 영화인들은 그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구로사와 아키라 개인적으로는 물론 일본 국민들 모두에게 그 기억은

영화 문화로서 미국 할리우드를 이겼다라는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졌을 것이고,

그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은 다시

1993년 구로사와 아키라의 마지막 영화인 이 작품 "마다다요"에서 두번이나 재현된다.

 

다 쓰러져가는 촌락의 등장은 단지 구로사와 아키라의 소시민극

"도데스 카덴", "밑바닥", "이키루"를 반복하는 것이도 하지만(특히 붉은 조명들은)

극 내부의 서사로만 보자면 구로사와 아키라를 여전히 지지해준

많은 관객들과 제작사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

 

한 때 제작비 문제로 노장을 버리기도 했지만,

결국 그에게로 돌아왔던 그들에 대한 감독의 예의가 작은 시퀀스에 담겨있다.

즉, 그들도 어려웠을 터인데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이다.

 

갑자기 고양이가 나왔다.

영화 중후반부 아니 영화 전체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하나의 차별화된 사건이자 주제가 된 시퀀스이다.

극중에서 고양이 이름은 도둑이라는 뜻의 "노라"라지만,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 노라는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그로 인해 주인공 선생과 부인은 극심한 내상을 입고 좌절하고 늙어간다.

극중 인물 모두를 비롯 주변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고양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기어이 고백의 한 자락이 자명하게 들려진다.

'왜 꼭 그 고양이여야 하는가'라는 국민학생의 질문에

주인공은 '그것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집 나간 고양이 노라는 과연 무엇일까?

위 장면에서 주인공이 출장 강의 나간 기차 안(아마도 꿈 속에서)에서 바라본 기차역의 고양이 노라는

"도데스 까덴"과 "데루수 우자라" 사이에 자학에 빠진 그 스스로일 수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흑백고양이 쿠르츠가 들어선 이후 다시 주인공 내외는 기력을 찾은 것이다.

새로운 고양이 즉 해외에서의 지원을 받아들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회복은 새로운 고양이로 표명된다.

다만, 고양이의 이름을 '짧다'라는 뜻의 쿠르츠로 한 것에서

'데루수 우자라" 이후 20여년간 겨우 5편에 그친 작품 활동이 아쉬웠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마지막 시퀀스는 꿈의 세계이다.

스스로 유년의 시절로 돌아와 숨바꼭질 놀이 중 짚단 사이로 숨어든 아이가 된 구로사와 아키라는 다시 한번

"마다다요"를 반복하며 영화의 초년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아름다움! 자신의 영화 인생에 대한 스스로가 보내는 최고의 찬사 이미지의 구현

아직은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싶은 노장의 마지막 인사는 황홀경으로 막을 내린다.

아트하우스 모모 극장을 나오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고 다른 한 편으로는 슬펐다.

이제 구로사와 아키라를 다시 만날 수 없어서 그리고 그의 자기 긍정이 너무나 놀라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