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률 9 - [단편] 사실

나는 이제까지 그를 11번 만날 수 있었다. 

장률은 1962년생이다.  

2016년 13번째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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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단편] 사실 The Fact (2006) : 초원은 더 푸르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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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현재 부산 영화의 전당 자료실에서 감상 가능하다.

​가끔 영화에서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묻는 교실 장면 등이 나올 때면 어설픈 언어학 개론을 들먹이고 싶었다.

과연 두 단어가 지칭하는 현상이나 개념이 구별 가능한 것인지, 단순히 순환논리에 약간의 살을 묻인 것은 아닌가하는.

물론, 사전에는 진실을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고 풀어놓겠지만, 여기서 함수는 '거짓이 없는'이라는 어구에 있다.

축약하면 거짓이란 무엇인가를 그대로 본편으로 옮겨올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곧 본편을 진실/허구의 경계놀음으로 단순하고

편리하게 이동시킬 위험을 포함하고 있다.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잠언' 허구는 영화 속의 현실'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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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사실, 진실 등을 나열하고 단어들의 간극 내부로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지만, 본편의 제목 '사실'에 대해 ' 실제'로 있거나

있었던 일을 지칭한다는 정도로 진술한다면 논제는 불과 4분 분량인 단편에서 실제란 무엇인가로 집약될 것이다. 장률이

<두만강> 이후 유령들에 대한 애도로 영화의 개입과 방문을 허용하고 심지어는 뜀박질 등으로 부활시키고자 함은 <춘몽>의

엔딩에서도 충분히 반복된 바 있다. 그것이 외국인 노동자, 영화 예술, 죽음의 시간 여행, 변두리 패배자들이라는 겉옷을 걸치고

있어도 이들을 관통하는 송곳같은 내면의 무기이자 의구심은 결국 영화의 자격 혹은 능력의 가능성에 있음도 불문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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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한 작품들에서 장률은 자꾸만 이같은 영화의 자격과 능력에 대해 전혀 의심을 표하지 않고 곧바로 전선에 개입하는 쪽을

택하고 스스로 그것이 영화의 부활을 꾀하는 길이라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망종>과 <경계> 사이에 있는 단편인 <사실>은

과거 장률이 이에 대해 부정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하나의 테이크로 완성된 본편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은 과연 두 남녀가

실제로 거기에 있었는가에 대해 360도 회전 촬영을 통해 반문함으로서 문득 <춘몽>에서 제목이 프레임에 올려지기 전의

옥상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두 편의 영화에서 그들은 거기에 있었지만, 영화가 그들을 떠나보내도록 찰나를 허락한 것인지

아니면 애시당초 영화라는 시선 자체를 유령의 그것으로 두고 <경주>처럼 죽은 자의 위문을 위해 배정한 것인지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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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의 세계 사적으로는 본편은 당연히 <경계>의 프롤로그로 좌표화되는데, 이는  <디지털 삼인삼색 2013 : 이방인들>의

한 단락이 <풍경>으로 확장되는 것과도 비견될만 하다.  <경계>의 순희와 창호가 <망종>으로부터 되살아나 불임의 땅이자

사자들의 공간인 몽고 사막으로 떠돌아 왔음에도 <경계>는 순희에게 전작에서 파괴되고 축출된 애정의 가능성을 되살리려했다.

아마도 이 과정 사이에서 장률은 내면의 갈등을 본편인 <사실>을 통해 진술했다면 어색하게도 본편의 공간이 사막이라기보다

초원이며 두 남녀의 행색이 양복 등의 정장임을 감안할 때 애당초 이들은 서로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분리되었음은 흥미롭다.

전작들과 비견해 어울리지 않는 공간과 그 공간에 흡수되지 못하는 복장 그리고 두 남녀의 스쳐감을 넘어선 무시 혹은 인지불가.

동일한 장소에서 서로의 곁을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나누지 않음은 그들이 초면이 아니라 나름의 사연이 내재되어 

저만큼 떨어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쁜 인사를 나눌 수도 없음을 지시하는 것이라면 본편의 기이한 조우는 다소 이해가능하다.

그럼에도 본편의 전면에 여성이 있음은 뜨끔해진다. 그녀가 약간 먼 발치에서 처음 보이고 카메라가 한바퀴 회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도 좌측 어깨 아래로 보이는 역시 그녀다. 무엇보다 그녀는 얼굴이 있고, 남자에게는 허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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