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윈딩 레픈 1 - 발할라 라이징//드라이브//장기수 브론슨의 고백

나는 이제까지 그를 4번 만날 수 있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1970년생이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데뷔작 "푸셔  Pusher(1996)"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십년 너머 건너편의 기억들은 그저 그를 덴마트에서 찾아온 감각있는 광고 감독 출신 혹은 타란티노의 세례자들로 멈추게한다.

그리고 이제 13년만에 깐느의 이름을 가지고 찾아온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마흔을 넘긴 중견이 되어있었다.

 

올해 깐느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입김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없이 작품, 감독, 여우주연까지 미국에 안겨졌을 때

매번 볼맨소리처럼 터져나오는 깐느의 상업화가 득세할만하다는 추정이 든다.

굳이 따져보자면 수상작들은 전통 할리우드의 길과는 멀거나 유럽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간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부천과 전주를 통해서 종종 소개되어왔지만, 매번 놓쳐버렸다.

그를 만나지 못한 시간동안 어떻게 자신의 관심사를 변화시켜왔는지 알 수 없으니 그저 아래 두편을 통해서 상상할 수 밖에 없다.

 

"드라이브"를 먼저 극장에서 보고 그 날 오후에 "발할라 라이징"을 만났다.

이는 "드라이브"에서 찾았던 관념들이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발할라 라이징"에서 깨졌거나 굳어졌다는 뜻이다. 

원작 소설의 영향, 감독 자신의 세계관 변화, 사회환경의 급변, 영화 사조의 유행 등 각종 요인에 따라서

감독은 각각의 작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한가지로만 추인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상상력임을 알지만,

최근 두 작품으로만 한정되는 재료의 한계에 의해 니콜라스 윈딩 레픈을 만날 수 밖에 없음이 답답하다.

 

지금의 그를 만들어준 발판인 "푸셔" 시리즈 3편과

카페의 영화사전 미노스님의 전언에 따르면 재기작이라 일컬어지는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2009)"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만나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그의 전면목이 아닌 발가락 정도에 머물 뿐이다.

두 작품의 공유점으로 고어적인 폭력, 방랑자, 자신의 희생, 남겨진 아이 등을 표식으로 삼아 그에게 간다.

 

 

1. 발할라 라이징 Valhalla Rising(2009)  : 당신의 파시즘 지수가 점점 상승한다. 

 

먼저 제목. "발할라"는 북유럽 신화에서 "전사의 집"을 뜻하는 일종의 이상향이고

감독의 "푸셔"시리즈를 비롯 주요 덴마크 영화와 할리우드 대작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매드 미켈슨이 맡은 외눈박이 전사는 북유럽 신화에서 유명한 지혜의 신인 "오딘"을 뜻한다.

 

제목을 해석하자면 "천국의 문이 열린다"가 되겠고 그 문은 오딘이 열어젖힌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 극 중심부를 이루는 십자군 원정대 전사들의 면모와 다신교, 원주민 종족의 등장을 보면

본편에 대한 주류적인 해석인 예수 재림과 희생의 모토로 이끌림은 당연하고 적정하다.

 

 

본편의 시작은 전사들간의 맨몸 결투와 신체 절단의 고어로부터 발현하는데,

초반부를 지나면 고어 향연은 감량되어 본편의 주제와 고어의 접합 부분이 필연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된다.

고어 자체의 폭발성은 윤리적으로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한 반발, 이탈과 자존에 따르는 당연한 수순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주인공 외눈박이 전사에 의해서 도륙당하는 상대 전사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이나 비윤리적인 모습에 한정된다.

 

좀 앞서나가자면 라스트 시퀀스에서 이제까지의 전사 능력을 쉽사리 버리고 무기를 버린 채

원주민 전사들에게 도륙당하는 주인공 "원아이" 전사의 최후는 이같은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데

여기에 더해지는 것은 그가 자신(을)이 보호(받)하던 아이에게 '발할라'-'이상향'을 열어주고서

스스로를 '발할라'- '전사의 집'으로 희생이라는 이름 하에 귀가하는 형식을 취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가 나누어놓은 5개의 단락,

"분노(wrath), "벙어리 전사(silent warrior)","신의 남자들 (men of god )",

"신성한 땅 (the holy land)", "지옥(hell)","희생(the sacrifice)'들은 명백히 십자군 순례의 허상을 지적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름도 가족도 없는 한 남자가 스스로를 폭발시키고 성찰하는 길의 여정과 깨우침의 시간이기도 하다.
종종 보여지는 붉은 배색의 얼굴 삽입 장면들은 주인공 내부의 전투를 상징하는 간결한 상징이다.

 

고어의 향연만큼이나 본편의 중심에 서는 주체는 주인공 전사를 따라다니는 아이라는 존재이다.

그가 끝까지 살아남아 홀로 바다-발할라-이상향을 응시하는 가운데 안개가 미지의 땅을 덮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소년이 바라보는 것은 바다이지만, 소년이 발을 딛고 서있는 땅은

여전히 원주민 종족의 신성한 지옥이라는 점에서 희망은 불완전하다.

 

남자 소년에 대한 보호와 생존이라는 의미는 낭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핍박받은 백인 남성이 전사가 되어 힘을 가지고 카톨릭에 반하면서도 십자군을 이끌고

원주민 종족에게 살해당한다는 서사는 얼핏 히틀러의 나치즘적인 구성력과 접합되는 부분이 있다.

남겨진 소년은 외눈박이 전사로 승계될 수도, 새로운 오딘이나 구원자가 될 여지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간에 웨스턴과 북유럽 신화의 조우가 만들어내는 짙은 마초이즘을 삼켜버릴 수는 없다.

짖긏게는 고어를 담은 타르코프스키라고 말하거나, 방랑자 서부극의 노을 너머의 그림자가 일렁이기도 하지만,

기본 골격에서 풍겨나오는 각성하는 인간이라는 테마는 차라리 느와르적이라고 해야겠다.

 

만약, 방어자의 폭력을 숭배하기 시작하여 그것이 종교화되는 지점과 백인 남성의 우월성,

원주민 종족의 이유없는 학살 등으로 뭉뚱그려 파시즘으로 연상할 수 있다면 본편은 조금 위험하다.

생존 폭력의 잔혹성이 던져주는 쾌감의 근원이 공격자의 그것과 비교할 때 결코 허약한 편이 아니라면

영화의 단락처럼 '신성한 땅'이 '지옥'이 되듯이 '희생'은 '광기'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자, 소년에게는 배가 없으니 바다로 갈 수 없어 원주민들이 지배하는 땅으로 들어가 그들 중 하나가 될 것인지

아니면 외눈박이 전사의 길을 따라서 원주민 아래서 싸움꾼이 될 것인지

혹은 그들 하나하나에게 복수의 전열을 세울 것인지 선택지는 관객에게 있다.

바다는 깊고 산은 안개에 젖어있으니 어디가 생문인지 당신은 알 수 있겠는가?

 

 

 

2. 드라이브 Drive(2011) : 길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

 

첫째. 유명한 느와르인 원작 소설에서 생략된 부분은 주인공 드라이버의 가족사이다.

이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가족이야말로 주인공이 고독한 이리가 아님을 보여주거나

적어도 관객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동정적인 정보 혹은 객관적인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은신처이기 때문이다.

물론, 알려진대로 원작에서 주인공 드라이버의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을 '그냥' 살해하고 아들에게 이해를 구한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이같은 극랄한 고어적인 가족 살해라는 매력적인 요소를 가차없이 삭제해버렸다.

본편의 드라이버 주인공을 원작 소설에서 떨어뜨려 단독으로 이해하기 시작해야할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둘째. 속좁은 이야기거나 뻥튀기겠지만, 본편을 영화광들에게 쾌감을 주는 작품으로 한정할 때

여기서 영화광이라고 지칭되는 대상은 어디까지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누구나 알다시피 본편은 원작 소설의 유무를 버린다면 골격적으로 웨스턴 클래식 "셰인 Shane(1953)"을 즉각 떠올리게한다.

극 내부에 둥둥 떠다니는 약자들과 범죄자, 주인공의 모습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장 피에르 멜빌의 곁에서 빌어왔고

제목 그대로 "드라이브"는 월터 힐의 "드라이버 The Driver(1978)"의 주인공과 자동차 추격씬은 겹쳐지며

장도리와 악당의 벌어진 입, 색감 가득한 폭력 공간은 "올드 보이(2003)"를 흠모함을 숨기지 않으며

이쑤시개 하나로도 "영웅본색 (1986)"을, 훌러덩 대머리 분장 마스크로는 "할로윈(1978)"을 서슴없이 떠올릴 수 있다.

여기에 분홍색 글자 폰트에서 풍겨나오는 80년대 B 무비들의 향취도 지워버릴 수는 없겠다.

 

물론 위에 나열한 작품 외에도 나의 미력한 견식이 미치지 못한 지점에 또다른 선배들의 유언장이 남겨져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위 작품들로 대충 한정 짓는다면 소위 언론에서 영화광, 씨네필이라고 일컫는 층위가 어느 정도 선인지 가늠할 수 있겠다.

다르게 말하자면 위 작품들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서 우리가 한때 열광했던 영화가 니콜라스 윈딩 레픈과 공유되었다는 인식이

당신을 들뜨게했다면 이 역시 이미 감독의 초창기 특징 중 하나인 타란티노의 젊은 이들에서 그다지 멀리 온 것은 아니다.

 

 

범죄자의 그늘을 가진 웨스턴적인 인물인 주인공 드라이버는 소설과는 달리 단 한마디도 인생에 대해서 말하지 않지만,

철저하게 전술한 "셰인"의 남자처럼 옆집 유부녀와 아들을 사랑하게되고 그로 인해 점점 더 자기 파멸의 길에 빠져든다.

물론, 그것은 클래식한 방식이 아닌 고어의 향연이라는 전작 "발할라 라이징"에서 이어진 흔적과 접촉한다.

리얼리티를 떠나서 묻자면 방어적인 폭력의 극악함을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로 오버랩시키려는 시도는

거의 유일한 고어 시퀀스인 승강기에서의 발길질 살인 등의 주인공 반격 상승 곡선을 너무 섬세하게 받아들이는 데 기인한다.

 

이같은 즐거운 발견 놀이를 잠시 잊어도좋다면,

옆집 유부녀의 남편이 백인 남성이 아닌 중남미 혼혈계로서 이름도 "스탠더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웨스턴의 오래된 교훈은 백인 남성 은둔한 총잡이가 가족과 마을을 구하고 황혼 속으로 사라진다인데.

그나마 "셰인"이 백인 농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총상을 입고 말 위에 실려 소년의 고함소리를 듣고 멀어지는데 비해서

본편에서 유부녀의 남편은 극 중간에 미리 살해당하고 캐릭터상 관객에게 허약함을 안긴다.

이는 만약 두 남자의 인종성을 바꿔치기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지를 상상해봤을 때 충족되는 부분과도 같다.

 

웨스턴의 낭만 마초의 로망은 총 대신 자동차를 무기로 할 뿐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는데

( 영화 내에서 드라이버가 결코 총을 스스로 무기화해서 잡는 일이 없다는 것은 의아한데,  왜 그는 모텔 총격씬에서처럼

 승강기 씬에서 상대편의 총을 빼서 한 방으로 살인하지 않고 여인에게 고어를 목격시키는 것일까?)

마지막 상대편 두목과의 결투에서도 두 사람은 의외로 칼을 주고받는다.

( 여기서 알버트 브룩스가 연기한 두목이 소장한 단검 컬렉션 가방 클로즈업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주인공 드라이버의 정체성을 담보할만한 유일한 대사를 되뇌어보자.

"착한 상어는 없어?" - 방어직이고 정의로운 폭력의 가능성과 정당성에 대한 소년(!)과의 문답

애석하게도 그 밑뿌리에는 지경단과 KKK, 총잡이 방랑자, 슈퍼 히어로들로 범벅된 비열한 거리의 역사가 놓여진다. 

마틴 스콜세즈의 출세작 제목이 "택시 드라이버"라는 점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까.

 

 

좀 다른 질문을 해 본다면 이 영화가 철저히 로드 무비에 기초해있음을  유추해볼 때

위 고어향연과 그것을 목격하는 여인의 존재라는 모순 불일치 처리는 감독이 할리우드에 내지르는 타협점일 수도 있다.

영화 속 살인은 모두 집-가정을 떠나서 발생하는데, 모텔-승강기-정비소-도로-주차장 등의 공간은

주인공 드라이버가 정주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될 수 없음을 공간의 인물학으로 증명하고 있다.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리얼리티가 성숙되지 않은 장면에서 오히려 이 영화의 호소력을 발견할 수도 있다.

주인공 드라이버가 갱 악당 론 펄먼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설 때 쓰는 할로윈의 살인마가 연상되는 가면은

극 내부의 맥락에서 본다면 그다지 설득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데,

론 펄먼을 처리하는 장면 끝까지 드라이버는 이 가면을 굳이 고집하고 있다.

 

그것은 곧바로 드라이버가 할로윈의 살인마와 같은 사이코 킬러임을 등식화하는 것이기보다

작품 내 흔치않은 미장센을 과시해야할 정도로 유럽 변방에서 할리우드 액션물에 대한 혐오와 희화화를 표변화한 것이다.

더불어 주인공 드라이버의 마지막 상대가 왕년의 B 무비의 제작자 출신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악당 론 펄먼이 정비소에서 차를 고를 때 외양이 좋아야한다고 떠벌일 때

왕년의 레이서 정비공 노인이 하는 말은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차를 보는 눈이 없어서야.."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타란티노의 전략으로 본편을 도색하면서도

내부 엔진에 있어서는 덴마크의 중견 작가라는 자존심으로 장착하여 내달리게 함으로서

내부가 텅 빈 듯한 복수혈전을 인종과 정의를 둘러싼 허위극으로 폭로함을 진정성으로 삼는다.

 

칼을 맞고도 드라이버가 감각 없는 팔로 운전한다면 그것은 느와르적인 인생 종점의 수다스러움 없이

같지만 다른 어딘가로 무한복귀하려는 정의롭고 홀가분한 백인 남성의 보호적인 폭력에 대한 희망사항일 것이다.

어쩌면 올해 깐느가 본편을 선택한, 로버트 드니로가 입김을 불어넣었을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싶다.

 

 

3.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   Bronson (2008)   : 마초가 예술을 만났을 때, 남는 것은 울부짖음.

 

이쯤되면 더 이상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길은 오직 한가지다.

그는 그 길을 가는데 두려워하자 않거니와 오히려 지극히 지루해한다.

가능한 모든 피바람과 주먹질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그 자리에 서려하지 않는다.

물론, 그 여정은 다름 아닌 마초의 것이고, 그는 오래된 운명의 비극을 재현하는 것을 즐거워할 뿐이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비디오로 만났던 <푸셔>가 궁지에 몰린 쥐 신세가 된 남자의 광기어린 질주가

그저 타란티노 세대라는 표지 아래서 쉽게 스쳐지나갔다면

<발할라 라이징>과 <드라이브> 이전에 나온 본편을 후작들과 연계시킬 때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관심은 전술했다시피 대책없는 마초의 추락을 목도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방점은 '마초'도 '추락'도 아닌 '목도', 즉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에 찍힌다.

 

나는 이전에 위 두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쓰면서 '아이'의 존재에 중점을 두면서

일종의 구원이라는 사명을 쥔 마초의 운명 순종극이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지만,

두 작품 이전에 만들어진 본편에서는 어디서도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조명이 비춰질 수 없는 객석의 관객들이다.

그렇다, 지금  34년간 감옥살이 중이며 그 중 30년을 독방 생활을 한 주인공 브론슨은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말해주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독의 화법이 그렇다.

 

꺼꾸로 말하자면, 이후 두 작품에서 '아이'의 존재를 관습적인 희망이나 가능성, 보고자 무엇으로 설정하든간에

적어도 본편은 끝까지 감옥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감옥 안에서도 철저하게 혼자일 수 밖에 없었던 마초가

자기의 속내를 기꺼이 1인 2역을 비롯 광대의 침묵과 뒷모습까지도 아끼지 않고 던져버릴 수 있도록

명암 조명 가득히 장식된, 대머리 얼굴의 톰 하디의 1인극으로 꾸며도 좋다고 울부짖는 형국이다.

 

 

주인공이 유년기 이후 친구 구타, 교사 구타, 경찰관 구타, 교도관 구타로 이어지는 폭력의 신봉자이자

철저한 길거리 파이터 화신으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극히 미량 다루어진다.

 

그가 26살 이후 60살까지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잠시 출감했던 시기에 그가 가졌던 자유의 절망감,

사랑한다 착각했던 여인으로부터의 차가운 절교, 길거리 화이터로서 받은 알량한 푼돈,

자기의 유년 시절을 되살릴만한 어떤 흔적도 없는 부모의 집 등은 기실 일종의 불필요한 부록이다.

왜냐하면, 그것들 자체는 그다지 운명인 양 하는 주인공 마초의 생에 대한 설명이 되기보다

어쩌면 지루하고 우울해할 관객을 위한 관습적인 영화 서비스에 불과하다. 

 

그에게도 남루한 진심이 있고, 어처구니 없는 자기 규칙이 있으며,

내재한 폭력의 분출은 타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딱지붙일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은 감독이 이미 극 내부에 내장되어있기를 바라마지않는 마초 비극의 구성 가락일 뿐이다.

 

<발할라 라이징>의 매즈 미켈슨은 초능력적인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왜 죽어가야만 하는가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은 모든 복수가 끝난 뒤 피흘리면서 도심의 밤 너머로 사라져야하는가

그들에게는 애시당초 가정의 행복 따위는 부여될 수 조차 없고,

오직 자신이 떠밀어올려야할 감당하지 못할 바위의 무게만이 자신을 지탱하는 유일한 존재력이 될 뿐이니.

 

본편의 톰 하디 역시도 비록 광대 1인 모노드라마를 시연함으로서 자신을 대중 속에 입증하려하지만,

마지막 소리없는 독백 이후에 관객은 박수치지 않고 모두들 침묵한다.

그들은 아니 감독이 배치한 관객 너머의 관객들은 이 비극이 극단의 폭력과 조율된 선곡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두의 가슴 속에 내재한 천근의 돌 덩어리와 울화통임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믿어주는 유일한 끈인 감옥 내 미술 교사의 얼굴에 자신을 분신화하고

기꺼이 자신도 흘리고픈 눈물 한 방울 하얗게 흘려주시는 센스까지는 감독도 말라고싶지 않았다해도

마지막 장면 비둘기장같은 독방에 갇혀 울부짖는 라스트 숏은 이제까지 웅혼하던 극을 다소 초라하게 만든다.

 

<장기수 브론슨의 고백>은 모든 마초들의 숙명에 대한 격렬한 비가 悲歌 이면서

어떠한 이탈의 조짐도 거부한 채 스스로를 무너뜨린 한 남자의 자기 파멸에 대한 찬송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