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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 6 - 방랑기

컷과송 2017-03-29 (수) 21:17 조회 : 452 추천 : 0

나는 이제까지 그를 10번 만날 수 있었다.

나루세 미키오는 1905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다.

최근에 <방랑기>에 대한 한글 자막이 미흡하게나마 제작되었고,

영상 자료원과 여성 영화제에서 그의 작품 <엄마>, <아내여, 장미처럼>이 상영될 계획이다.

이 중 몇 편을 보게될 지 모르지만, 먼저 <방랑기>를 읽는다.

10. 방랑기 放浪記 ( 1962) : 휴지통에 핀 진달래는 아름답지 않다.

하야시 후미코가 작고한 지 11년이 지난 시점에 왜 그녀를 소환해야했을까라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

차라리, 나루세 미키오의 작품 세계 안에 그녀의 삶이 주인공으로 기용되었다고 하는 편이 마땅하다.

하야시 후미코라는 작가와 나루세 미키오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나루세 미키오가 그녀의 소설 원작이 아닌 영화를 연출했을 때에도 거의 동일한 지점을 맴돌았음은 굳이 재론할 필요가 있을까.

가령, 다시 혹은 여전히 주점의 여인으로 돌아왔다 혹은 머문다.

실제 하야시 후미코의 생활이 어떠했든간에 영화는 그녀가 글을 쓰는 모습과 술집 접대부로서 일하는 모습

양쪽을 거의 공평하다고 할만큼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고 필름 위에 분배한다.

비록 프레임의 내부가 하야시 후미코의 글귀로 인물을 가리면서까지 채운다해도

(이같은 기법은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에서 흔한 면모는 아니다.)

영화는 그만큼의 무게를 그녀가 일하는 술집 접대부의 일상에 대해서도 지목한다.

국내의 호스테스물이 범람했던 당시의 그녀들과

나루세 미키오의 게이샤 및 술집 접대부로서의 그녀들의 삶의 양상은 당연히 동일한 맥락의 것은 아니다.

<별들의 고향> 류의 그녀들은 순수와 육체라는 모순적인 양상으로 남성 관객들을 환타지 대상으로 추락했다면

나루세 미키오의 그녀들은 가면의 시간 하에 생계를 위해 내달리는 참혹한 삶으로 거의 고정되어있다.

즉, 그녀들에게는 기실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는데, 이는 시대를 달리하는 영화의 배경에서도 변용이 없다.

여기서 질문은 왜 그녀들에게 다른 선택은 가능하지 않는가에서 멈춰질 수도 있다.

즉,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그녀들에게는 가부장제 하에서의 교육과 안정됨이 제공되지 않는다.

이를 정치 사회적인 맥락으로 읽어야할 여지가 있다면, 이는 나루세 미키오의 남성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본편 안에서 남성은 철저히 이분화되는데,

최후까지 여주인공 곁를 배회하는 지킴이로서의 두 남성이 관객의 관심을 묶어두는 부차적인 존재라면

나루세 미키오의 세계 속 본래적인 남성인 무능력하고 여성 착취적인 시인, 소설가는 여전히 반복된다.

이들에 대해서는 전술한 바와 같지만,

감독과 원작 소설가가 이들 남성에게 시대적인 죄책감을 부여했다는 인상은 짙지 않다.

그들이 전쟁 전후에 대한 일본 사회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지점은 본편에서는 거의 찾기 힘들다.

여주인공의 두 남자 외에도 그의 계부 역시 가족의 생계를 거의 책임지지 못한다는 설정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강인한 여성, 미조구치 겐지의 수난 여성 사이 어디쯤에서

여자의 일생이라는 자신의 굴레 안에서 가부장제, 가족, 아기라는 이름을 획득하지 못하는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들을 연상하자면 그다지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대개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라는 점인데,

본편 안에서도 생계를 책임질만한 남성을 초반부부터 포석해두었음에도

여성은 대사로까지 전달될 정도로 잘생긴 남성 문학가에게 계속 이끌린다.

이 지점에 대한 본능적인 설명은 제시되지 않지만,

한번의 후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다시 동일한 미남-문학가에게 끌린다는 설정은

이들 남성의 역할이 기실 방랑기 자체의 본질적인 성장관문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도래하게한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여주인공은 과연 성공한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까라는 반문은

꺼꾸로 말하자면 남성에의 착취를 일종의 고난의 정점으로 돌이켜보게한다는 맥락일 수 있다.

본편 안에서 가장 이채로운 장면은 여주인공 하야시 후미코를 연기하는 타카미네 히데코가

술집 주점에서 손님석을 돌면서 일본의 민속적인 무언극을 표현할 때이다.

이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그녀가 자신의 방랑기 자체를 집약시키는 가면극을 무언독백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여기에는 나루세 미키오의 페르소나인 타카미네 히데코의 놀라운 연기가 결정적인 핵심이 된다.

본편에서 그녀는 나루세 미키오와 같이 작업한 어떤 영화와도 완전히 다른 여성의 면모를 보이는데,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선 그녀가 20대 초중반의 술집 여종업원이자 소설가 지망생을 연기하면서

단한순간도 기존의 타카미네 히데코를 떠올릴 수 없도록 철저하게 밉도록 찡그린 얼굴을 유지한다.

그것은 <번개>, <부운>,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의 생기있고 우아하지만, 서서히 추락하는 여성과도 다르다.

그녀는 처음부터 가족의 생계, 남성의 부양이라는 짐에서 거의 해방되지 못하는데,

타카미네 히데코는 이같은 어두운 삶의 여정을 엔딩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정시키는데,

관객은 그녀가 단한순간도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없다.

이는 물론 실존 인물인 하야시 후미코와 원작 소설의 인물 묘사에 기인한 것일 수 있지만,

나루세 미키오가 그같은 여성 구현을 그대로 프레임에 옮겼다는 지점은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미모가 아닌 다른 자립의 가능성으로서 여성이 제안되는 것은 감독의 술집 여성과도 다소 결별한 지점이기도 하다.

더불어, 본편 속에서 일종의 미약한 여성 연대나 남성 혐오 선언에 대해서는

차라리 전술하 바의 방랑기적 남성이라는 성장 관문과 동일한 맥락으로 해독하는 것이 적정하다.

여주인공이 빈곤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후배 술집 여성을 돕거나

그녀를 희롱하려는 남성에게 험담을 퍼붓는 장면 등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인성이 변화되는 그녀를 감안한다면 일종의 과거사적 순수와 분노의 초상일 뿐이다.

적어도 본편이 나루세 미키오의 기존의 세계와 달리 감독의 후기에 다다르면서 변이되는 지점은

여주인공이 더 이상 미모가 아닌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라는 점 뿐만 아니라,

소설가로서 성공한 이후에 그녀가 보이는 강자로서의 약자에 대한 탈색된 인정이다.

더 이상 그녀에게서 과거의 나루세 미키오의 여성을 발견하는 것이 곤란하고,

그녀 스스로의 입으로, 마치 소설 '방랑기'의 출판 기념회에서 전남편이 자기 변론을 늘어놓듯이

그녀는 삶 자체에서 이제 한발 물러서버린 부르조아의 자부심을 넘어선 가난 혐오와 불이해를 보인다.

문제는 이같은 그녀의 입장을 순순히 나루세 미키오의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어폐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흡사 본편 속에서 그녀가 1920,30년대 사회주의 문인들과 접촉하면서도

결코 혁명과 같은 이상화된 세계는 도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표명하는 것과도 연결될 수 있는데,

결국 그녀는 자신의 성공을 이룬 문필가가 되었지만, 더 이상 예전의 그녀로 돌아갈 수 없다.

성공 자체의 기로가 된 동인지 등단에서도 그녀는 부탁받은 경쟁자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제출하지 않는다.

이것을 악독하게 변심한 방랑기의 결론이라고 읽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독법일 것이겠지만,

영화의 엔딩이 성공한 소설가로서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숨지는 1951년에 배당되는 것과 연관해서 읽을 필요는 있다.

마치 더 이상 과거의 그녀가 아닌 성공 안에 안주한 그녀의 삶을 조명할 필요가 없다는듯이

영화가 잠들듯이 운명했을 그녀로 마감될 때 그것은 분명 <부운>의 엔딩과는 다른 좌표에 놓인다.

나루세 미키오가 성공하는 여성이라는 캐릭터를 거의 한번도 제시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어쩌면 일종의 영화적 여성 주체에 대한 감독이라는 가부장제의 지침처럼 읽힌다.

그녀에게 방랑기를 처방한 이후에 주인공의 변심을 확인한 이후 내리치는 죽음의 조용한 수면과도 같은 칼날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인생이 과연 성공적인가? 왜 좀 더 순탄한 선택을 거부했는가?

그녀로 하여금 지금 그 성공한 자리에 도달하게 한 방랑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한다.

가난에 대한 환멸, 그것을 쓰레기통을 뒤엎어놓은 악취의 직시라는 소설적 혹은 영화적 정경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엔딩은 거의 평생 그녀를 지켜본 한 사내에게 내비치는 야멸찬 삶에 대한 혐오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 남자는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고 갑자기 정원으로 나가고자하고, 그녀는 진달래를 기르고 있다고 말한다.

남자가 서서히 정원으로 사라지는 동안, 그녀는 다시 책상으로 가고 조용히 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진달래가 아닌 그녀의 꿈 속, 혹은 수미쌍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분명히 생의 가혹함이 있었고, 문학가로서의 지독한 수업과 성취가 있었음에도

나루세 미키오는 그녀를 영화 중반부에 무덤들의 돌비석 옆에 앉아 삶을 자문하게 만들고

결국 책상 위에서 잠들게 한 이후에 어린 소녀 시절로 플래쉬백하는 선택을 공인시킨다.

방랑한 이후에 그녀가 도달한 성공의 자리를 감독은 몹시 어색하게 받아들인다.

고의적으로 인물의 캐릭터 탈색을 감행하면서까지 영화는 가난을 포기하지 못한다.

결국 남은 것은 관객의 판단. 이같은 나루세 미키오의 고집을 이해해야할까.

오직 고난의 꽃으로 그려지는 여성들의 매순간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지적을 오히려

생의 엄연한 방랑으로 치장하려는 인생론의 주제론이 과연 그토록 숭상받아야하는가?

그것이 성공이든 죽음이든 결국 그것은 비관주의의 미학에 매혹된 자의 또다른 환타지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당신이 만약 본편에서 유일하게 고민할 지점을 찾고자했다면, 여성의 성공으로 집약해도 좋겠다.

하지만, 정리했다시피 이는 나루세 미키오 세계의 가장 특이한 변형에 대한 성찰의 시작이기도 할 것이다.

<방랑기>는 미모의 여성도, 다시 빈곤해지는 여성도 찾아볼 수 없는 나루세 미키오의 변형된 후기작이며

그녀의 삶을 방랑으로 받아들임으로서 또다른 비관주의의 단면을 구축했다고 믿는 영화 가부장의 착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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