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180600045&code=940100
[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계약]투기 봉쇄·불로소득 환수…‘토지공개념’에 다시 주목
김경학 기자 [email protected]
서울 강남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최근 폭등하고 있다. 한 달 새 1억원 이상 오른 아파트가 수두룩하다. 집값이 단기간에 오르는 것은 시세차익, 즉 불로소득을 노린 거래가 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투기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지만 부동산 투기는 성격이 다르다.
가상통화 투기는 가상통화를 매매하지 않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는 사회의 전반적인 주거비·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정된 토지를 소수의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면 절대 다수는 최소한의 공간도 점유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의 전체 토지 가격은 국내총생산(GDP)의 4.2배에 이른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탓도 있지만, 투기를 막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개발한 것이 더 큰 원인이다. 결과는 심각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주기적으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고, 토지 불로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경제 불평등이 심화됐다. 투기는 서민과 중산층에 박탈감을 안겼고, 건설 분야에 과잉투자를 유발해 국가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1987년 헌법 개정으로 토지의 소유와 처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절히 제한할 수 있다는 이른바 ‘토지공개념’ 조항이 들어갔다.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는 122조다. 이에 따라 1990년대 택지소유상한법과 토지초과이득세법 등이 도입됐다. 그러나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에 폐기됐다. 2000년대 들어 종합부동산세법이 도입됐지만 이 역시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개발이익환수 완화 등 오히려 토지공개념에 역행하는 정책들이 추진됐다.
이대로 가면 불평등은 심화되고 경제성장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존속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헌법 개정으로 부동산 투기 금지, 불로소득 환수 등 토지공개념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토지공개념 3법, 좌초나 유명무실…‘투기’에 무방비
ㆍ토지공개념의 역사
"■게임 방법
최근 나온 모바일 게임 ‘프렌즈 마블’은 1990~200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부루마블’을 떠올리게 한다. 땅·건물 등을 사고팔며 이익을 많이 남기는 이가 승리하는 이런 게임의 원조는 ‘지주의 게임(The Landlord’s Game)’이다. 1904년 미국의 엘리자베스 매기가 개발했다. 자본주의 독점의 폐해와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 사상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경향신문은 한국 사회의 부동산 문제를 경험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다. 게임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플레이어 2명은 시작부터 상황이 다르다. 한 명은 자금 3억원이 있고 연봉 1억원을 받고, 다른 이는 자금 3천만원이 있고 연봉 3천만원을 받는다. 실제 자신의 자산과 연봉으로 게임을 해도 된다.
② ‘정책카드’를 오린 뒤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엎어둔다. 1부터 3까지 나오는 주사위로 게임을 한다. 1부터 6까지 있는 주사위를 쓸 경우 4는 1, 5는 2, 6은 3과 같다.
③ 플레이어는 빈집에 도착하면 투자금을 내고 제3의 세입자로부터 ‘턴세’를 받을 수 있다. 턴세는 플레이어가 주사위를 던지는 턴마다 받는 돈이다.
④ 한 바퀴를 돌아 출발 지점에 도착하거나 지나갈 때는 연봉을 받는다. 이때 정책카드를 뒤집어 지시에 따른다.
⑤ 두 플레이어 모두 다섯 바퀴를 돌면 게임이 끝난다."
토지는 인류 역사 그 자체다. 인간은 토지에서 지낼 곳과 먹을 것, 입을 것 등을 얻는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차지한 토지를 사람들은 신성하게 여겼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지 수만년이 흘렀지만 토지의 용도는 그대로다. 인간은 여전히 토지에서 지낼 곳과 먹을 것, 입을 것을 얻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토지가 다른 물건과 같은 재화로 여겨졌고, 부를 축적하고 늘리는 용도로 토지를 쓰게 됐다.
■ 개인 소유 대상이 된 토지
조선시대 토지관은 왕토(王土)사상이다. 토지도 하늘 아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왕의 것이라는 뜻이다.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는 것과 비슷했다. 왕은 이 토지에서 세금을 걷을 권리를 신하에게 주어 정권을 유지했다. 조선후기 들어 소유권이 중층적이 됐다. 왕의 것이면서 지주의 것이고 농민의 것이었다. 조선의 모든 땅은 왕의 것이라는 왕토사상이 바탕에 있었고, 소유권을 위임받은 지주도 자신의 땅이라 생각했으며, 이 땅에서 소작하는 농민들도 자기 땅이라고 생각했다. 토지는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토지관이었다.
이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은 토지관을 크게 바꾼다. 일제는 1910년 본격적인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했다. 토지조사사업의 목적에 대해 견해가 나뉜다. 식민지 착취를 목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을 기획하고 시행했다는 ‘수탈론’과 토지소유권 제도의 근대적 전환이 목적이라는 ‘식민지근대화론’ 등이 있다. 다만 이견이 없는 부분은 토지조사사업이 토지를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소유권, 이른바 재물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제가 지주를 식민지배 동맹세력으로 형성하기 위해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 한반도에서는 지세율을 낮게 했다는 연구도 있다. 일제는 조선에서 쌀을 증산해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1920년대부터 지주 중심 농업정책을 펼쳤다. 일제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조선인과 일본인 지주들은 확보한 쌀을 판매하는 시장이 열리는 그들만의 ‘윈윈 게임’이었다.
대신 땅이 없는 농민의 삶은 팍팍해졌다. 1930년대 세계 공황과 함께 강해지는 독립운동을 신경 쓴 일제는 농촌진흥정책 등 회유책을 썼다. 1940년대 다시 전쟁을 준비하며 쌀이 필요했던 일제는 ‘조선증미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쌀을 강제 공출했고, 소작하는 농민은 수확량의 50~60%를 바쳤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토지에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의 문제를 알고 있었다. 1941년 임시정부 건국강령은 “토지의 상속·매매 등을 금지하고 고리대금업과 사인의 고용농업을 금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1945년 해방 직후 이슈는 농지개혁이었다. 국민 절대다수가 농민이던 시절 ‘나한테 땅을 나눠달라’는 것이었다. 농지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거세 우파 지식인들도 농지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 생각했다. 1948년 제헌헌법은 86조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제헌헌법에는 토지가 없었다. 85조는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수산자원·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하거나 또는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고 규정했다.
1950년 3월에 몰수와 농지분배가 완료됐고 3개월 뒤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당초 북한은 남한 주민들이 토지 소유권 등에 불만을 가져 인민군에 우호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 당시 농민들은 이미 소작농이 아닌 자기 땅을 가진 존재로 북한군을 적대시했다. 이 때문에 농지개혁이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기초가 됐다는 해석도 있다. 한편 지주들은 지가증권으로 보상을 받았는데,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증권은 휴지조각이 됐다. 결과적으로 농지개혁과 전쟁을 통해 지주세력은 몰락했다.
전쟁 이후 토지를 많이 소유한 기득권층은 거의 없고, 재산 상황이 비슷한 소농들이 전국에 있는 상태가 됐다. 경제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층이 없는 상황은 국가 주도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국민들은 밤낮 없이 일하고, 적게 쓰면서 저축했다. 그리고 모은 돈으로 자식들을 공부시켰고, 그렇게 자란 인재들은 고도성장을 이끌어 갔다. 그러나 다시 토지를 둘러싼 문제가 생겼다.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고, 1970년대 서울 강남 등 도시개발이 이뤄지면서 투기가 일어났다. 땅값은 식을 줄 모르고 꾸준히 올랐고, ‘부동산 불패 신화’가 생겨났다. 땀 흘려 일해 돈을 모으는 것보다 부동산 투기로 얻는 불로소득에 눈을 돌리게 됐다.
1980년대에도 투기 광풍이 불었고 토지의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됐다. 5% 소수가 전체 주택을 지을 대지의 약 60%를 소유하고 35%의 공장용지를 소유했다. 1988년 6대 도시의 주택보급률은 45~58%에 불과했고, 질적으로도 나빠져 국민 1인당 택지 면적은 45㎡였다. 6대 도시는 1인당 택지 면적이 21.6㎡에 불과했다.
■ 투기에 무기력한 토지공개념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2년 개정 헌법이다. 114조에 “국가는 농지와 산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1972년 개정된 유신헌법은 ‘농지와 산지’에 ‘기타 국토’를 추가했다. 그러나 두 조항 모두 토지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1987년 개정된 헌법에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라고 명시했다. 적용 대상을 국토 전체로 확장하고 토지가 국민 모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밝혔다. 또 국가가 토지에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하는 목적도 ‘효율적인 이용·개발과 보전’에서 ‘균형’을 추가해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으로 바꿨다. 이같이 토지공개념을 구체화한 것은 고도성장과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토지 문제가 불거진 때문이다. 특히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1980년대 후반은 서울 올림픽 전후로 전국 곳곳에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던 때여서 토지공개념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컸다. 이후 토지공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법률이 마련됐다.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으로 불리는 ‘택지 소유상한에 관한 법률’(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토초세법),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개발이익환수법)이다.
1989년 12월 만들어진 택지소유상한법은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할 수 있는 택지 면적의 한계를 정하고, 이를 초과했을 때는 초과소유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였다. 1997년 외환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폐지론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택지소유상한법은 1998년 9월 폐지됐고 이듬해 4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사망선고를 받았다.
택지소유상한법과 함께 만들어진 토초세법은 지가 상승을 기대해 보유하고 있는 유휴토지에서 발생한 토지초과이득을 환수하는 내용이다. 헌재는 1994년 7월 토지 보유기간 중 지가 하락에 따른 보완조치 규정이 없다며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이후 토초세법은 전면 개정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뒤 부동산 경기 침체, 실현되지 않은 이득에 대한 과세 등 문제가 제기됐고, 결국 1998년 12월 폐지됐다.
‘개발이익환수법’은 개발사업의 시행 등에 의해 정상 지가 상승분을 초과한 토지가액의 증가분 일부를 국가가 환수해 지방자치단체 등에 배분하는 것이다. 토지공개념 3법 중 유일하게 유지되는 개발이익환수법도 1998년 헌재에서 일부 단서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았다.
그래도 이 같은 토지공개념 3법이 시행되던 1990년대 지가는 안정된 편이었다. 1997년 국민의 정부도 토지공개념 강화 의지가 있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모든 것을 바꿨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를 위축시킬 만한 규제와 제도는 모두 없앴다.
그 영향은 2002년 들어선 참여정부가 받았다. 참여정부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도입했다. 종부세도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부부 합산 과세가 위헌의 원인이지만, 부동산 개발로 경제성장을 이끌려던 이명박 정부는 종부세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부동산 부양 정책의 완성은 박근혜 정부 시절 규제 완화였다.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다 완화한 결과 다시 투기장으로 돌아섰다. 그 결과, 2014년 가액 기준으로 개인 토지 소유자 중 상위 10%가 전체 개인 소유지의 64.7%를, 법인 토지 소유자 중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지의 75.2%를 소유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재벌·대기업의 토지 소유가 급증했다. 2008~2014년 상위 1%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 가치(재산세 부과 기준)는 546조원에서 966조원으로 77% 늘었다. 특히 상위 10개 기업이 소유한 부동산은 180조원에서 448조원으로 급증했다. 재벌 대기업이 종합부동산세 무력화로 인한 보유세 부담 감소와 법인세 완화로 인한 사내유보금 증가를 틈타 토지 투기에 몰두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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