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투성이 낡은 古典번역, 과감하게 쉬운 말로 바꾸자"

"그 제도가 비로소 크게 갖추어져서 殷(은)나라의 質(질)하므로부터 周(주)나라의 文(문)함에 이르니 그 因循(인순)하고 改革(개혁)하고 減損(감손)하고 補益(보익)하고함은 時勢(시세)가 그만둘 수 없음이 있는 것이다."

17세기 실학자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1962년 우리말로 옮긴 완역본 일부인데, 지금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한문을 그대로 옮긴 옛 말투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비로소 제도가 제대로 갖춰졌기 때문에 은나라의 소박한 문화가 주나라에 와서 훨씬 세련되어졌다. 옛 제도를 따르거나 개혁하고, 일부를 빼거나 더하는 작업들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던 것이 당시의 시대적 흐름이었다' 정도로 풀어낸다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줄곧 '앞'만 보고 달리던 우리 고전 번역 사업이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방대한 한문 전적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우리말로 옮기는 양적(量的)인 문제였다면, '재번역'을 통해 기존 번역의 미흡한 점을 고치는 질적(質的)인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20일 오후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 첨단강의실에서 여는 학술대회 '한국 고전 재(再)번역의 현황과 과제'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짚는 자리다. 진재교 성균관대 교수는 미리 낸 발표문 '고전 번역의 난제와 재번역'에서 "변변한 공구서 하나 없었고 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릴 수도 없었던 시기에 번역 작업을 했던 선학들의 역량은 놀랍지만, 학문 연구가 축적되고 독자들의 어문 감각이 크게 달라진 지금에 와서 보면 문제점이 많다"고 했다.

한문 투 문장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지만, 최근의 학술적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 오역과 불명확한 번역, 불충분한 주석 역시 재번역이 필요한 이유라는 것이다.

진 교수는 '동문선(東文選)'의 기존 번역 중 신라 문인 최광유의 한시 '정매(庭梅)'를 예로 들었다. '응대서행만리인(應待西行萬里人)'이란 구절을 '서방에 땅 손질하는 만리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리'로 옮겼는데, 당시엔 최광유의 인물 정보가 불명확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당나라에 유학하던 시절에 매화를 보고 고향을 생각하며 지은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고향에 있는 매화나무가 당나라 유학생인 자신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국역의 전승과 재번역의 과제'를 발표하는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교수는 "독자가 읽어서 쉽게 알 수 있게 하려면 구문과 글자의 체면을 굳이 살리지 않고 과감하게 쉬운 말로 번역해야 한다"고 했다.

신승운 한국고전번역원장은 "고전 번역 반세기가 지났으니 과거의 작업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이라며 "앞으로 초역에 쏟을 역량이 줄어들지 않도록 중요한 책 위주로 재번역 대상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