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편의상 평어체로 작성하였습니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이야기
가이낙스 3부
컴퓨터게임의 성공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무섭게 가이낙스는 분열되기 시작했다
특히 오사카 시절부터 리더 역할을 해오던 오카다 토시오의 공백은 좀처럼 수습하기
어려웠다. 이때 회사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인물은 당시 이사였던 '타케다 야스히로'와
'제너럴 프로덕츠'에서 넘어온 '사와무라 타케시'였다.
제너럴 프로덕츠는 오카다 토시오가 오사카 시절 다이콘 III의 성공에 힘입어 차렸던
SF, 애니메이션 굿즈샵으로 다이콘 필름과 함께 가이낙스 설립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곳이다.
오카다 일행이 도쿄로 건너간 후 오사카에 남아 실질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던 인물이
사와무라 타케시였는데 오카다가 가이낙스를 떠나자 도쿄로 건너와 새로운 사장이
된 것이다. (이는 오카다의 권유이기도 했다.)
제너럴 프로덕츠와 오카다 토시오
이 곳의 수익은 다이콘 필름의 활동자금이 되었다
원더 페스티벌의 시초는 제너럴 프로덕츠에서 열린 이벤트 행사였다
다이콘 필름 시절 단체 사진
우측에서 두 번째가 사와무라 타케시 (가이낙스 2대 사장)
세 번째가 타케다 야스히로 (이사)
사와무라 체제가 확립된 후 가이낙스는 대대적인 개혁 및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제너럴 프로덕츠와 가이낙스의 합병, PC 게임 부문의 해체(나중에 부활), 직원 급여
2배 인상 등 분열을 어떻게든 수습해보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작품이었다. 나디아 이후 이렇다 할 기획이 나오질 않았고
어쩌다 나오는 기획도 진행 단계에서 자꾸만 무산되고 있었다.
왕립우주군의 속편 '푸른 우르'도 그 중 하나였다.
왕립우주군의 50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푸른 우르는 야마가 히로유키가
꽤 오랜 기간 구상해오던 프로젝트였다. 비록 전작이 흥행은 실패했지만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에서였다. 이번 작에서는 감독 자리를 안노 히데아키에게
양도하고 메카닉 디자이너로 '공각기동대'의 시로 마사무네를 섭외하는 등
전작과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야심찬 기획이었다.
공각기동대의 시로 마사무네를 메카닉 디자이너로 섭외했었다
그러나 야마가의 이상은 가이낙스의 현실, 일본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그의 구상대로라면 푸른 우르는 전작의 8억 엔보다도 훨씬 많은 예산이 필요했는데
버블 경제가 무너져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당시의 업계에서 반다이처럼
거액을 투자해줄 스폰서가 나타날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이 프로젝트는 결국 제작 도중에 예산을 충당할 길이 막히자 그대로 동결되고 말았다.
그 사이 쏟아부은 돈은 2억 엔에 달했다.
그림 콘티 B 파트, 원화는 A 파트까지 완성된 상태였다고 한다
푸른 우르 프로젝트의 좌절은 금전적인 손실도 뼈아팠지만 더 큰 문제는
안노 히데아키였다. 원래 안노는 나디아 제작 이후 기력을 대부분 소진한 상태였다.
본래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인 그가 감독 자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탓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우울증 증상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힘을 내
야심차게 시작한 푸른 우르마저 좌절되자 그는 가이낙스 스튜디오를 떠났다.
(안노는 이 때를 '죽지 못해 살아있었다'고 회상한다.)
정처없이 방황하던 안노는 더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후의 작품은
기획도 원작도 감독도 모두 스스로 하기로 결심한다. 계기는 나디아였다.
훌륭하게 성공시킨 작품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획이었다.
단지 표절을 피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설정을 바꿔갔을 뿐이었다. 때문에 안노는
나디아에서 자신이 도입한 오리지널 설정들을 포함한 자신만의 기획을 구상한 것이다.
그것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다.
나디아 이후 방황하던 안노가 마음을 다잡으며 되뇌었던 문구다
그렇게 기획은 완성되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가이낙스를 멋대로
떠난 상황에서 어디에 어떻게 의뢰해야 할 지가 막막했다. 다행히 안노에게는
'킹 레코드'가 있었다. 과거 푸른 우르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일때
왕립우주군에서 인연을 맺었던 킹 레코드의 프로듀서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대뜸 "안노 씨, 뭔가 하고 싶은 기획 있으면 가져와요"
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안노는 빈말인 줄 알았지만 다시 그를 찾아가
에반게리온의 기획서를 내밀자 그는 "합시다"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 프로듀서는 오오츠키 토시미치, 하야시바라 메구미를 가수로 데뷔시켜
스타덤에 올린 인물이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프로듀서
프로듀서를 구한 다음은 제작사였다. 안노는 가이낙스에서 하길 원했지만
그들이 다시 받아들여줄 지는 미지수였다. 안노와 오오츠키는 일단 가이낙스를
찾아가서 기획을 설명하고 통과되면 그 곳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선라이즈'
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행히 가이낙스는 안노를 다시 받아주었다.
에반게리온은 선라이즈에서 제작될 가능성도 있었다
남은 것은 방송국과 스폰서를 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디아에서 NHK와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가이낙스는 업계에서 이미지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오오츠키가 기획안을 들고 여기저기 설득에 나섰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런 거 만들면 회사에서 짤린다" 라는 식의 조롱이었다. 그런데 딱 한 군데
협력을 자청한 곳이 있었다. '타츠노코 프로덕션'이었다.
담당 프로듀서 우에다 모토키가 SF 오타쿠였던 덕분에 가이낙스에 매우
호의적이었던 것이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타츠노코의 합류는 작품에 있어
품질보증과 같은 의미가 있었다. 뒤이어 TV도쿄와 NAS(광고대행사)가
합류하여 방송시간을 확보했고 타츠노코와 인연이 있는 프로덕션I.G,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딘 등의 든든한 백업까지 마련되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1995년 2월부터 카도카와 쇼텐의 '소년 에이스'에서
만화로 연재되고 같은 해 10월부터 TV도쿄를 통해 방영되었다.
작품의 외견만 놓고 본다면 메카닉, 미소녀, SF, 오컬트 등의 상업적 요소는
물론이고 안노가 보고 자란 다양한 만화, 애니, 특촬물들의 오마쥬로 가득했다.
사다모토 요시유키 특유의 슬림하고 세련된 그림체도 눈길을 끄는 요소였다.
VIDEO
신세기 에반게리온 오프닝
플래시 컷을 통해 복선을 제시하는 연출은 당시로선 참신한 시도였다
오프닝 곡 '잔혹한 천사의 테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노래방 선곡 순위 10위 안에 들어있다
(2016년 기준 6위)
신지의 캐릭터 디자인은 나디아와 거의 동일하다
레이의 이미지는 사다모토가 당시 좋아했던 록밴드 '근육소녀대'의 노래 가사 중
"붕대로 새하얀 소녀가 그려진 우표를 받아 어디로든 가자"
라는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안노는 아스카를 주인공으로 하려 했지만
제작진의 만류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미사토와 세일러 문의 츠키노 우사기는
앞머리 스타일이 비슷하고 성우도 동일하다
'츠키노 우사기가 어른이 된다면?' 이라는 생각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에반게리온은 작화나 연출 면에서도 당대 TV 애니메이션보다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예산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디아의 학습효과 덕분인지 힘을 뺄 곳은 과감히 빼고
줄 곳은 확실하게 주는 완급조절은 기본이고 실사연출을 효과적으로 도입하여 극의
현실성(특히 인물의 심리 묘사)을 끌어올렸으며 현장 상황에 따라 제작 방식을 유연하게
전환시키는 노련함까지 보이며 나디아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독특한 글자배치로 유명한 명조체 텔롭은 이치카와 곤 감독의 오마쥬다
VIDEO
9화의 對 이스라펠 전투는 명장면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 화를 연출한 미즈시마 세이지는 훗날 강철의 연금술사의 감독이 된다
그래서 에반게리온의 에피소드 중 가장 유쾌하고 긍정적이다
프로덕션I.G에서 제작한 13화는 에바의 전투신이 나오지 않음에도
섬세한 작화와 스릴있는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순조롭게 가는 듯했지만 역시 가이낙스였다. 아슬아슬하게 맞춰가던 일정이 19화를 정점으로
무너지고 만 것이다. 사실 붕괴의 조짐은 처음부터 있었다. 방송 전 1년 반의 제작기간 동안
완성한 분량은 고작 12화, 그것도 작화뿐이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추후에 설명)
결국 20화부터는 슬라이드 쇼에 가까운 정적인 연출로 가득했고 비디오판에서 별도의
수정을 거치게 되었다. 극장판을 기획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후반부의 일정 붕괴는 예고편을 보면 확실하게 드러난다
26화 예고편에선 그림 그릴 시간도 없었는지 대본을 찍어 내보냈다
20화에서는 미사토와 카지의 정사신이 2분 동안 이어졌다
정지화면이었지만 적나라한 신음 소리 때문에 방송국에 항의가 빗발쳤다
(에반게리온의 방송시간은 18:30~19:00 였다)
미사토(OFF) 「애드립 최대한 길게」
(미츠이시 님.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안노 올림)
※ 미츠이시 = 미사토의 성우
급기야 25, 26화에서는 기존의 전개에서 완전히 벗어나 내면세계의 연극이 펼쳐졌다.
일정상 원래 계획대로 방송이 불가능해지자 안노가 애초에 의도했던 메시지를
전달하는 쪽으로 노선을 급격히 바꾼 것이다. '자기계발 세미나'(종교 단체나 다단계 업체에서
많이 하던 세뇌식 교육)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연출은 애니메이션에서는 전례가 없는
충격적인 결말이었고 이는 세간에도 많은 화제가 되어 에반게리온 열풍을 촉진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심리 치료극 같은 25, 26화의 전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마지막 장면의 연출은 가이낙스 본사 근처에 있던 패밀리 레스토랑 '시즐러'의
직원들이 생일축하 파티를 해주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996년 3월 종영된 에반게리온의 시청률은 평균 7.1%, 좋고 나쁨을 논하기에
어딘가 애매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반응의 물결은 서서히 그리고 거대하게 밀려왔다.
비디오와 레이저디스크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PC통신에서는 온갖 난해한 설정과
충격적인 결말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뒤늦게 접한 사람들로 하여금
방송국에는 재방송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윈도우 95의 등장으로 PC 보급이 대중화되었고 에반게리온 토론이
활발해지는 밑바탕이 되었다
토론의 장이 되었던 일본의 PC통신 서비스 NIFTY-serve
종영 이후 격한 반발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두 종류의 극장판 제작이 발표되었다.
하나는 TV판 25, 26화의 리메이크 버전, 또 하나는 TV판의 세계관과 다른 2시간 분량의
완전 신작으로 1997년 개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년 안에 두 개의 극장판을 제작하기엔 안노도 제작진도 모두 지쳐있었고
업계에서도 더 이상 도움의 손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완전 신작 기획은 취소되고
1997년 3월에는 총집편과 리메이크 25화의 중간까지를 수록한 Death & Rebirth(사도신생),
7월에는 리메이크 25, 26화를 온전히 수록한 The End of Evangelion(에어/진심을 그대에게)
이 개봉되었다.
극장판 사도신생 개봉 전날 철야 대기를 하고 있는 팬들의 모습
네르브를 습격한 제레에 맞서 홀로 싸우는 아스카
그리고 나타나는 9기의 양산형 에반게리온...
사도신생은 여기에서 끝이 나면서 많은 팬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주제가 '혼의 루프란'이 유명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뒤이어 개봉한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다룸)
최근 안노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취소되었던 완전 신작 극장판의 줄거리는
진격의 거인과 매우 흡사했다고 한다
(인간을 잡아먹는 사도가 출현하고 AT필드로 벽을 쳐서 막는 등)
두 극장판을 끝으로 시리즈는 마무리 되었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결말과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로
그 열풍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이는 주류 언론과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심도 있게 다루어지며
'우주전함 야마토', '기동전사 건담'에 이은 3차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가이낙스에 있어서는 최초의 흑자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졸부 가이낙스가 돈을 뿌리고 다닌다' 는 이야기가 떠돌았는데 이는 안노가
그동안 적자에도 열심히 일해준 제작진과 협력업체들에 해당 수익을 최대한 분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4부에서 계속...
(비밀상점)
대용량 일회용 전자담배 비밀특가!
(7078)
애니게시판 월간 추천 
